우선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가장 큰 변화는 영호남 지역주의가 철저히 무너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약진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참패를 통해 일부 조짐이 발현된 ‘지역주의 완화’는 이번 대선을 통해 확실히 꽃을 피운 모습이다.
과거 대선에서는 영남은 보수 정당에, 호남은 중도·좌파 정당에 몰표를 안기는 관행이 반복돼왔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영남에서 80.5%의 지지를 얻었으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호남에서 89%의 지지를 획득했다.
이 때문에 영호남은 언제나 특정 후보에 표심을 몰아주면서도 정작 ‘캐스팅 보터’로서의 지위는 수도권과 충청 등지에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너진 지역구도 아래 사실상 전(全) 지역의 표심이 대선 기간 내내 출렁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레이스의 열기를 달궜다.
지역구도가 깨진 대신 여전히 심각한 양상을 표출한 세대 갈등은 5·9 대선의 ‘옥의 티’로 거론할 만하다. 젊은 세대는 진보 후보를, 중장년층 이상은 보수 후보를 밀어주는 집단 관행은 이번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이런 경향 속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30·40대로부터 높은 지지를 끌어낸 반면 60대 이상 장년층은 홍준표 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고른 지지를 보냈다.
다만 이들 세대의 중간에 끼어 있는 50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과거 3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가 대거 유입된 50대 초·중반은 문 후보를 차기 대통령의 적임자로 일찌감치 지목했지만 50대 후반은 안철수·홍준표 후보에게 더 큰 호감을 나타냈다.
과거 대선에서 보수 정당에 40% 안팎의 지지를 던지며 충실한 상수(常數) 역할을 했던 보수층이 이번에는 마음 기댈 후보를 쉽사리 찾지 못하고 막판까지 변수(變數) 노릇을 하는 데 머물렀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실제로 대구경북을 비롯한 우파 유권자들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안철수 후보, 홍준표 후보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며 ‘노마드(유목민) 보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후보 단일화나 정당 간 합종연횡 없이 5자 구도가 끝까지 유지됐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대선 기간 내내 관심을 모았던 보수 후보 단일화, 제3지대론(論) 등 갖가지 이합집산 시나리오는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다. ‘문재인 대세론’이 막판까지 지속됐음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정치공학적 연대 없는 대선’은 평가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타 공인 진보 후보의 약진도 이번 대선이 남긴 긍정적 유산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큰 선거 이벤트 때마다 협소한 정치지형 속에서 들러리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5·9 대선에서 소신 투표의 바람을 타고 진보 후보의 대선 최고 득표율을 경신하면서 진보의 희망이자 미래 아이콘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