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베드민스터’ 한미 정상회담

손철 뉴욕특파원

“시작이 좋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나라 밖에서도 관심이 크다. 소탈한 취임식과 야 4당을 먼저 방문하고 국민을 챙기는 새 대통령의 모습은 해외에도 인상적으로 비친 모양이다. 경륜을 갖춘 통합형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하고, 개혁과 전문성을 기대할 만한 인물을 요직에 기용하고 있는 점도 기대를 모으는 듯하다. 두 달가량의 정권 인수 기간도 없이 단행된 깜짝 인사에도 여론 반응이 호의적인 것은 문 대통령이 유력 후보들 중 “가장 준비돼 있다”는 지지자들의 주장을 확인하는 측면도 있어 다행스럽다.

기자가 문 대통령의 취임 첫날 행보 중 가장 눈여겨본 것은 미국과의 첫 접촉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첫 전화통화는 초조했던 마음을 가라앉게 할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대통령이 공석이었던 지난 3개월간 증폭돼 온 북핵 및 미사일 개발 고도화에 따른 안보 불안은 새 정부의 최대 국정 현안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공교롭게 한미 간 정권교체기가 이번에도 엇갈려 보수 공화당 행정부가 미국에서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난 사이 한국에는 진보세력인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양측은 대북 접근법도 적잖이 달라 20년 전부터 북한 문제를 놓고 한미 정상 간 갈등이 단골 화두로 예견되고는 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현충원에서 국회와 청와대·사저를 숨 가쁘게 동분서주할 때 백악관은 ‘불난 집’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 중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경질해 언론과 의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미국 정부 내에서는 이를 방어하는 데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이러다 첫 정상 간 통화가 연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가 하원을 통과하자 이를 선전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 일정조차 즉석에서 연기할 만큼 예측불허의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주미 대사관 등 외교 라인이 걱정을 ‘기우’로 확인해주고 무엇보다 양 정상 간 첫 통화가 30여분 동안 이어지며 내용도 충실한 것을 보면서 ‘출발이 정말 괜찮구나’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대도 고개를 들었다. 두 정상이 전화에서 약속한 대로 이른 시일 내에 만나기로 한 시점이 오는 7월 독일에서 개최될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이전이 된다면 ‘여름 백악관’으로 꼽히는 베드민스터(Bedminster)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그림이 상상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겨울 백악관으로 유명세를 모은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는 문을 닫은 터라 그 자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애용하는 뉴저지의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이 차지한 상태다. 미일·미중 정상회담이 마라라고에서 잇따라 열리며 성공적 만남을 예약했듯 베드민스터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한미 간 대북정책을 둘러싼 엇박자 우려가 싹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드민스터는 트럼프 정부 최고 실세인 맏딸 이방카 트럼프와 그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여서 향후 4년간 탄탄한 한미 관계의 초석을 놓는 데 적잖은 기회도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중국과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견고한 한미 동맹과 일치된 북핵 해결의 의지를 보여준다면 그 상징성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들어 함께 집권하는 인연을 맺은 문 대통령에게 “우리 두 사람의 대통령 선거 승리를 같이 축하하자”고 제의한 만큼 베드민스터 정상회담은 미국 측에도 충분히 논의할 여지를 남겼다. 한국이 특사 대표단을 파견하고 미국도 고위자문단을 보내 문 대통령의 방미를 긴밀히 협의하기로 한 만큼 ‘베드민스터 정상회담’ 아이디어가 폭넓게 논의될 무대도 갖춰졌다. 새 정부의 첫 출발이 결실을 거둬 베드민스터가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