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돈, 이수근, 김병만, 김숙, 박나래 등이 ‘개그콘서트’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젊은 층들도 많을 듯 하다. 정형돈은 2002년 KBS 17기 공채 개그맨 출신이다. 같은 해 ‘개그콘서트’ 도레미 트리오 코너와 봉숭아학당의 갤러리 정으로 단숨에 인지도를 높였다. 느끼함을 바탕으로 한 비호감 캐릭터였지만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버라이어티에 진출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 원년 멤버가 됐으며 이후 ‘냉장고를 부탁해’, ‘주간아이돌’ 등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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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의 든든한 족장 김병만. 사실 그는 족장 이전에 달인이었다. KBS 17기 공채 개그맨인 김병만은 ‘개그콘서트’ 최장수 코너 달인을 만나다에서 활약했다. 본인을 메인으로 내세운 코너인 만큼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긴 시간을 끌고 나갔다. 김병만은 개그감 보다는 뛰어난 체력과 무술실력으로 빛을 본 케이스. 해당 능력을 ‘정글의 법칙’에서 여실히 증명하며 2013년과 2015년 대상을 받기도 했다.
명실상부 여자개그맨 양대 산맥 김숙과 박나래도 ‘개그콘서트’ 출신. 먼저 김숙은 1995년 KBS 11기 공채 개그맨이다. 길었던 무명 시절을 딛고 2002년 봉숭아학당에서 따귀소녀로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개그콘서트’ 출연 기간이 길지는 않다. 2003년 ‘웃찾사’로 넘어간 뒤 난다김 캐릭터로 더욱 인지도를 높였다. ‘무한걸스’, ‘인간의 조건’,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 여성 중심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지난해에는 백상예술대상 여자예능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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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예능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은 한 둘이 아니다. 먹방 예능의 1인자 김준현은 네가지, 미끼,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유민상은 리얼 사운드, 민상토론, 사운드 오브 드라마 등을 이끌었다.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무대를 꾸몄다. 뷰티유투버로 제2의 인생을 꾸미고 있는 김기수도 2001년 ‘개그콘서트’에 봉숭아학당에서 댄서 킴으로 인기를 얻었다.
‘옹달샘’ 트리오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 역시 ‘개그콘서트’가 연예계 데뷔의 발판이었다. 유세윤은 ‘장난하냐’, 장동민은 ‘그까이꺼 대충~’ 등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개그콘서트’의 부흥을 이끌었다. 세 사람은 특히 복학생, 할머니 등 높은 캐릭터 소화력과 순발력 있는 입담이 강점. ‘개그콘서트’를 벗어나 ‘코미디 빅리그’를 비롯한 타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해서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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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그콘서트’가 낳은 스타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딜레마다. 신인 개그맨들은 먼저 ‘개그콘서트’를 통해 얼굴을 알리지만, 더욱 높은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 결국 ‘개그콘서트’를 벗어나게 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개그콘서트’만 해서는 현실적으로 살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고정프로그램을 찾아가게 된다”며 “‘개그콘서트’ 입장에서는 나가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손실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 손실을 후배 개그맨들이 지속적으로 채워주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과 개그맨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정 평론가는 “‘개그콘서트’가 문호를 확 열어서 고정의 개념을 없애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외부에서 활동하면서도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신진 개그맨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며 “‘개그콘서트’ 시스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코너 자체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이 협업하는 체계다. 선배가 받쳐주고 중간에 젊은 친구가 서며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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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로 기회를 얻고 인기를 얻은 스타들이 900회를 빛낸다니,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다. 이 같은 선후배의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한 단발성 기획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개그콘서트’의 또 다른 돌파구로 작용해야 한다. ‘개그콘서트’의 침체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몰락이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신예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면, ‘개그콘서트’ 출신 스타들의 명맥도 이어질 수 없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