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오른쪽)가 15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아버지 김두영 씨와 포옹하고 있다. 아버지는 김시우의 어릴 적 골프 스승이자 미국 생활의 매니저다. /폰테베드라비치=AP연합뉴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못잖은 위상을 자랑하는 특급대회다. 총상금(1,050만달러)은 US 오픈(1,200만달러) 다음이다. PGA 챔피언십과 같고 마스터스와 브리티시 오픈보다 많다. 올해도 세계랭킹 25위 이내 선수 중 24명이 출전하는 등 월드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빅3’ 더스틴 존슨(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제이슨 데이(호주)의 대결에 관심이 쏠렸지만 결국 마지막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한국의 만 21세 김시우(CJ대한통운)였다. 김시우가 PGA 투어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제5의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 위업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시우는 1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TPC 스타디움 코스(파72·7,189야드)에서 열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3개를 뽑아내는 무결점 플레이로 3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한 그는 공동 2위 이안 폴터(잉글랜드)와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이상 7언더파)을 3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희망’에서 ‘새 강자’로=김시우는 고교 2학년이던 2012년 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에 합격했다. 사상 최연소(17세5개월6일)였다. 하지만 18세가 되기 전이라 투어카드를 받지는 못했고 초청을 받아 출전한 8개 대회에서 빅리그의 ‘맛’만 봐야 했다. 아쉬움을 접고 2년간 2부 투어에서 샷을 갈고닦은 그는 2015-2016시즌 마침내 PGA 투어에 본격 입성, 지난해 8월 윈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일궜다. PGA 투어 다섯 번째 한국인 우승자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5년간 출전권, ‘돈방석’ 확보=특급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은 프로골퍼에게 인생역전이나 다름없다. 우승상금만도 거금 189만달러(약 21억원)지만 우승에 따르는 특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5년간의 투어카드를 보장 받아 5년간 시드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대회 우승 때는 2년이다. 신분과 수입을 보장 받은 셈이다. 마스터스와 US 오픈, 브리티시 오픈 3년 출전권도 확보했다. 정규 시즌 뒤 플레이오프 대회에도 나갈 수 있어 더 많은 상금을 노릴 기회를 얻게 됐고 후원사 계약금 등 몸값도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 돌부처 승부사=김시우의 강점 중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긴장하지 않는 ‘강심장’의 면모다. 이번 우승도 21세의 나이에도 특급대회 우승 경쟁의 압박감을 거뜬히 이겨낸 결과였다. 김시우는 이날 출전자 중 유일하게 보기를 적어내지 않았다. 나흘 내내 오버파를 기록하지 않은 선수도 김시우와 폴터, 스콧 단 3명뿐이었다. 투어 플레이어 전용 코스(TPC)라는 명칭처럼 소그래스는 손꼽히는 난코스다.
공동 선두에 2타 뒤진 단독 4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김시우는 1번홀(파4)에서 중거리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스스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동선두였던 카일 스탠리와 JB 홈스(이상 미국)가 첫 홀부터 보기를 범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7번홀(파4) 버디로 단독 선두에 오른 김시우는 9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해 2위로 올라온 폴터와의 거리를 2타 차로 벌렸다. 특히 18홀 가운데 그린 적중이 여덟 차례에 그쳤지만 벙커에 빠진 위기를 모두 파로 막아내는 등 중압감에서도 위기관리 능력이 빛났다. ‘섬 그린’으로 악명 높은 17번홀(파3)에서 안전한 티샷에 이은 두 차례 퍼트로 파를 지킨 그는 마지막 18번홀(파4)도 페어웨이우드 칩샷으로 침착하게 세 번째 샷을 홀 가까이 붙인 뒤 파를 지키며 최연소 우승을 확정했다.
톱 랭커들은 김시우 드라마의 특급조연 역할을 했다. 세계 1위 존슨은 4타를 줄인 끝에 공동 12위(2언더파)에 올랐고 2위 매킬로이는 3타를 잃고 공동 35위(2오버파)로 마쳤다. 3위이자 이 대회 사상 첫 2연패에 도전했던 데이는 이날만 무려 8타를 잃으며 공동 60위(7오버파)로 내려앉았다. 마스터스 우승자 가르시아도 6타를 까먹고 공동 30위(1오버파)로 대회를 마감했다. 노승열은 공동 22위(이븐파), 강성훈은 공동 30위에 랭크됐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