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치]'비정규직 제로'...이상-현실의 괴리

정규직 전환대책 천명 이후
고용안정 요구 목소리 봇물
무조건 정규직화 땐 부작용
성과연봉제 등 혁신 전제돼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한 뒤 우려대로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15일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비학생조교 150명은 파업 출정식을 열고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정규직 전환으로 월급이 많이 줄어든다며 정규직 대비 90%까지 월급을 달라는 것이다.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은 “정부 청사 청소·경비 등 비정규노동자와 아이돌봄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원노동조합도 “집배원 수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업계에서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이상 실현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노동시장 현실과 괴리가 커 자칫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비정규직은 계약직·임시직·파트타임·파견직 등 종류가 다양하고 특성도 제각각이며 일하는 시간과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획일적인 정규직화를 꿈꾸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민간기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비용이 상당해 신규 채용은 물론 비정규직도 줄여 오히려 고용시장이 더 경직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특히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등 혁신 없이 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화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짐을 넘기는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부담이 커진 공공기관과 민간기업들이 자회사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일단 정규직화한 뒤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자회사를 청산하는 식의 꼼수마저 예상된다. 아울러 새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공약도 기업의 인력 부족, 비용 증가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 중소기업계가 약 9조원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새 정부 노동정책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요해 제품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있던 일자리도 없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기업들의 현실 상황에 맞게 정책 속도를 조절해 단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도원·김우보기자 theon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