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새 정부의 교육개혁 내용을 보면 이와 달리 매우 완만하고 점진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의 교육공약 중 대학입시 제도만 봐도 수시를 단순화하고 수학능력시험을 점차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등 현행 체제 안에서 보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예측 가능한 선에서 개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학 서열화 문제도 지역 국립대를 육성하고 거점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서울의 주요 사립대 수준으로 인상하는 등의 방향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 외고 등의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고 입시 시기를 일원화해 사교육 수요를 줄여가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만으로 공교육이 정상화될지, 교육수요자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사교육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또 대학 구조개혁도 재정 지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지난 정부에서 목격해온 바다. 전반적으로 현실을 인정하면서 단계적 개선을 해나간다는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 같은 방향은 근본적으로 과거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땜질식 처방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원회가 전문가들과 함께 심도 있게 논의해 내린 결론은 앞으로 우리 교육이 창의력과 융합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하며 암기식이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수업, 컴퓨팅 사고력 배양 학습 등 미래형으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교육부가 예산이나 교육과정 등을 독점하면서 군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 정신에 맞게 대학을 비롯한 교육현장에 대폭 자율권을 줘야 다양하고 개성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교육계뿐 아니라 정치권조차도 교육부의 관료화에 대한 비판이 높은 만큼 교육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영국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조직의 수평적 융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대학의 행정기능은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과 통합해 ‘혁신전략부(가칭)’를 설치하고 초중등학교의 행정기능은 보건복지부의 보육 및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기능과 통합해 ‘아동청소년학교부’를 만드는 등 미래형 부처의 도입을 생각해봄 직하다.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신정부의 교육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것인지, 어떤 인재를 키워나갈지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사진이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정책 설계를 위해 교개추위는 대통령의 임기를 넘어서는 임기 10년가량의 ‘국가교육개혁위원회’ 설치를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 측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를 거쳐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자문기구들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갖고 강력히 뒷받침하지 않으면 옥상옥의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의 존립기간은 줄이고 준비가 되는 대로 조기에 국가인권위원회 등과 같은 행정기관의 지위를 갖는 국가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대선 기간 동안 다른 후보들도 유사한 공약을 한 만큼 정치권의 합의도 비교적 용이할 것이다. 느슨하고 여유 있게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공교육 정상화, 학교현장의 자율화에 주력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4차 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키워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 마련에 치열하고 진지하게 힘을 쏟아야 한다.
이기수 전 고려대총장·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