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걷다 지치면 배에 몸 싣고...봄의 끝자락에 올라타다

등산로·뱃길 등 취향대로 코스 선택할수 있어
앉은뱅이 약수터·환벽정 등 볼거리도 가득
"한번도 안온 사람 있지만, 한번만 온 사람 없죠"



관광객들이 차돌바위나루에서 배에 올라타고 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광안내소까지 올라가는 길이 험준한 산 정상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처럼 느껴졌다. 공공의 ‘적’이 된 미세먼지 수치가 높지 않고 날씨가 맑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5분 넘게 오르자 마침내 산막이옛길의 출발점인 안내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의’가 꺾인 듯 보였던지 동행하던 관광해설사가 한마디를 건넨다. “여기는 누가 와도 눈높이에 맞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요.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어요.”

해설사의 말에 안내소 근처에 세워진 안내 간판으로 눈이 갔다. 해설사의 말처럼 동적인 것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등산로, 걸어서만 즐길 수 있는 힐링 코스, 배를 타고 여유롭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 등 다양한 여행이 가능했다.

산막이옛길과 갈론나루를 잇는 167m 길이의 연하협 구름다리.
시간과 체력적으로 등산은 무리였고 그렇다고 배만 타기에는 산막이옛길을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배를 타고 중간에 내려 걷는 코스를 선택했다. 차돌바위나루에서 배를 타고 새뱅이 회항지까지 갔다가 연하협 구름다리 근처에 있는 갈론나루에서 내려 산막이옛길을 걷는 코스였다. 걸어간다면 연리지가 출발점이고 굴바위나루가 종착점이 되겠지만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길을 택했다.

안내소에서 배를 타는 선착장인 차돌바위나루까지는 300~400m 거리다. 내리막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운항하는 대운2호를 타기 위해 나루터 매표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난해 유도선 승객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사고 발생시 승객 신분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도사업법이 개정되면서 대운2호를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분증이 있어야 했다. 배를 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신분증을 챙겨와 다시 깔딱고개를 넘어야 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괴산호를 지나가는 유람선.
46인승의 2층 배인 대운2호에 오르자 나루터 왼편에 우리 기술로 준공한 괴산수력발전소의 모습이 한눈에 담겼다. 잠시 정신을 놓고 감상하는 사이 배는 새뱅이에서 회항해 굴바위농원에서 하차했다. 여기에서부터 산막이옛길 코스를 걸어갈 수 있지만 연하협 구름다리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굴바위농원에서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갈론나루로 향하는 작은 배로 갈아탔다.

폭 2.1m의 다리에 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면 배를 타고 왔을 때의 기분과 달리 정적인 느낌으로 산막이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배를 타고 설명을 들은 포인트를 거꾸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 5분 정도 걷자 처음 눈에 들어온 곳은 산막이옛길 9경 중 하나인 삼신바위였다. 삼신(해·달·별)이 목욕을 즐기다 날이 밝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는 한적한 경치를 느끼며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였다.

달구지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막이마을이 보인다. 여러 가게와 민박집으로 바뀐 마을을 지나면 가재가 많이 살고 있는 가재연못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배를 타고 오며 본 산막이옛길 9경 중 하나인 환벽정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연천대라고 불리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인 환벽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신선이 탐낼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섬 위에 얹혀 있는 정자를 건너편에서 바라봤지만 정자 위에서 보는 풍경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산막이옛길에서 바라 본 환벽정.
다래숲동굴과 괴산바위를 지나면 산막이옛길의 중간 지점인 병풍루가 보인다. 물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곳으로 물안개가 보일 때와 노을이 졌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고 해설사는 설명했다. 얼음바람골을 지나자 대운2호 선장이 설명한 앉은뱅이약수터가 나왔다. 두 다리가 멀쩡한 채 옛길을 타고 있었기에 과거 앉은뱅이가 체험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물맛만은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묘약이었다.

굴 안이 바깥 기온보다 낮은 여우비바위굴을 지나 매바위·호랑이굴 등 옛길을 걷는 동안 끊임없이 눈을 자극하는 장소들이 나타나 지겨울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걷다 보니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망세루에 도달했다. 비학봉·군자산·옥녀봉·아기봉과 좌우로 펼쳐진 괴산호를 볼 수 있는 정자로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히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고인돌쉼터 연리지를 거쳐 옛길의 종착점에 이르자 해설사가 출발 전 한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산막이옛길에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습니다.” /글·사진(괴산)=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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