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짙은 관료들은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의 진보적 정책이 다분히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진보정부 10년간 철학과 맞지 않는 정책을 두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느낌을 가진 관료들도 제법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보수정부가 집권하자 관료들은 맞는 옷을 입은 형국이었다.
보수정부 10년간 관료들의 보수화 사례는 많다. 단적인 것이 법인세다. 참여정부 말기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법인세 인하를 주장했고 국회에서 관료들은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관료들의 입장은 180도 바뀐다.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효과, 경제 파장 등을 따져보지도 않고 그냥 22%로 낮추라는 숫자 하나만 내려왔다”며 “바로 직전까지 법인세 인하에 반대했지만 국회에서 법인세 인하를 주장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은 “소수 대기업 곳간에 쌓여 있는 돈을 더 걷어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다. 그러나 관료들은 흘려들었다. △국제 흐름과 맞지 않고 △각종 공제 축소로 실효세율이 올라가고 있으며 △법인세 인상 시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반대했다. 신성장 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와 관련해 대기업을 포함시키면서 “결국 우리 경제에서 혁신을 할 능력이 있는 곳은 대기업밖에 없다”는 것이 관료의 입장이었다. 지난해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을 놓고 보건복지부는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고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 역시 “공무원도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소득 양극화 문제 또한 대다수 악화하고 있다는 여론에 “개선되고 있다”고 한 것도 전형적으로 보수화된 관료의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부총리가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책 틀부터 관료들의 정책에 대한 인식까지 대대적인 개혁이 예고돼 긴장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공약집만 봐도 전 정권의 정책 기조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새 정부의 실질 권한을 쥔 김 위원장이 강한 개혁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생각보다 변화가 급진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본래 강한 어조로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면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와 같이 청와대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와 관료사회의 충돌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안 그래도 관료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데 보수정권 10년 동안 더욱 보수화된 것이 사실”이라며 “참여정부 때와 같은 청와대와 관료들 간 충돌이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