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K단의 성장 비결…악의 보편성과 돈





‘사람들은 메리 터너의 발목을 한데 묶어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옷에 기름을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다. 옷이 타서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자 이번에는 돼지 잡는 칼로 그녀의 배를 갈랐다. 태아가 땅으로 떨어져서 울음소리를 냈지만 누군가가 아이의 머리를 발로 짓이겨 버렸다. 그 다음 메리 터너를 총으로 쏘았다. 한두 발이 아니라 수백 발이었다.’ 191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겸 저술가인 데릭 젠슨의 저서 ‘거짓된 진실’에 따르면 만삭의 흑인 여성이 이렇게 죽임을 당했다.

메리 터너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은 공권력. 백인들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복수를 다짐했다는 혐의로 1918년 5월18일 보안관에게 체포돼 이튿날 백인 군중에 넘겨져 잔인하게 살해됐다. 메리 터너를 죽인 사람들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대부분 KKK(Ku Klux Klan) 단원이었다. 터너를 체포한 보안관과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관, 판사도 KKK의 비밀 단원이었다. 조지아 주지사는 ‘KKK 단원이나 KKK단을 누가 고발한다면 즉시 사면장을 써주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마저 이를 눈 감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흑인들을 공격하고 죽인 백인을 대놓고 두둔했다. “자기방어 본능에 자극받은 남부의 백인들은 정당한 수단 외에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며, 무식한 검둥이들이 투표할 경우에 정부가 너무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므로 그것을 저지하려 한 것이다.” 윌슨의 후임자인 29대 미국 대통령 워런 하딩은 더 나갔다. 데릭 젠슨에 따르면 백악관에서 성서를 들고 KKK단 가입 선서를 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백인들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흑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을 전후해 갈등의 골의 깊어졌다. 흑인들은 백인과 똑같이 소집 영장을 받은 이상 투표권을 정상화하라고 요구했다. 전쟁 통에 국가주의·전체주의 경향이 강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백인들은 비밀결사인 KKK단을 중심으로 맞섰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악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흥행 대작이며 수려한 영상으로 유명한 영화 ‘국가의 탄생’은 KKK단을 정의의 십자군으로 그렸다. 백인 처녀가 북군 흑인 상사의 겁탈을 피하려다 추락하는 장면에 남부인들은 치를 떨었다. 다 죽어가던 KKK단이 이 영화로 되살아났다.

영화 개봉 7개월 만인 1915년 추수감사절에 윌리엄 시먼스(William Simmons)가 2기 KKK단을 출범시켰다. 미국·스페인 전쟁 참전용사, 전도사라는 전력으로 ‘대령’ 또는 ‘목사’로 불렸던 35세의 시먼스가 이끄는 KKK단은 전체주의 분위기를 타고 세를 불려 나갔다. 1920년대 중후반에는 단원을 800만 명까지 불렸다. 미국 남부에서는 KKK 단원이 아니면 출마조차 어려웠다. 1928년에는 KKK 단원 4만여 명이 수도인 워싱턴 특별구역에 몰려가 시가를 행진하며 위세를 뽐냈다.

KKK단이 급성장한 진짜 비결은 따로 있었다. 돈. 윌리엄 시먼스가 광고전문가 에드워드 클라크를 영입한 1920년부터 단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클라크의 비결은 피라미드식 조직관리. 단원 모집책에게 신입회원의 가입비 10달러 중 4달러를 떼어줬다. 클리크는 모집책에게 ‘클리글(Kleagle)’이란 계급을 주고 미국 전역을 ‘왕(王) 클리글’이 주재하는 ‘KKK 왕국’으로 나눴다. 소왕국의 위에는 ‘대마왕’이 있고 클리크 자신은 황제 클리글이라고 불렸다. 시먼스는 가장 높은 ‘황제 마법사’였다. 신입회원이 모집책(클리글)으로 성장해도 애초 모집책은 일정액을 받을 수 있었다. 근면한 클리글은 당시 가장 확실하고 소득이 높은 직업으로 통했다. KKK 단원도 크게 불어났다.

시먼스와 2기 KKK단의 도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흑백 평등은 공산당’, ‘히틀러와의 협조’를 주장하다 2차 대전이 터져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시먼스의 사망(1945년 5월18일, 65세) 무렵 KKK단은 종적을 감췄으나 1960대에 부활한 3기 KKK단이 최근 활개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KKK 단이 시가행진을 계획하는 등 다시금 양지로 나왔다. KKK 단원은 정신이상자나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자들일까. 그렇지 않다. 1920년대 KKK단원은 ‘건전한 시민과 성직자’들이 다수였다. 요즘에도 보통 백인 남성들이 주류다.

KKK단은 미국 만의 병리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새로운 나치’가 확산되는 추세다.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광기’에서 우리도 빠지지 않는다. 집안에서는 어르신이고 인자한 할아버지가 과격 폭력 시위를 벌이며 ‘애국자’라고 강변하고 젊은이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 악성 댓글을 뿜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재 권력에 눈먼 정치군인들의 명령에 따라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군인들도 대부분 사회에서는 멀쩡했던 청년들이지 않았나. 악의 보편성이 있다면 그것을 극복할 힘 역시 평범한 시민들에게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악에 저항했던 5월의 노래가 이제야 다시 들린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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