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후 숨을 고르던 주식시장이 ‘트럼프 스캔들’ 공포감에 떨고 있다. 다음달 중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EM)지수 편입을 앞두고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경계감이 가뜩이나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 혼란은 국내 증시의 조정을 길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의혹과 관련한 ‘사법방해’ 파문이 탄핵 국면으로 점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증시로 불똥이 튀고 있다. 그동안 고공행진을 벌였던 미국·유럽 증시가 이번 스캔들로 트럼프의 친성장정책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감에 급락하자 코스피지수도 하락 마감했다. 전날 밤 미국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는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독일·프랑스·영국 증시도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장 초반 2,267.08까지 밀리다 2,280선에서 줄곧 등락을 거듭한 끝에 0.27%(6.26포인트) 떨어진 2,286.82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스캔들이 코스피의 상승 심리를 무너뜨리지는 않겠지만 스캔들이 확산하는 시점이 좋지 않다고 우려한다. 최근까지 상승장을 이끌어왔던 실적 장세가 한풀 꺾인 시점에서 외국인의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벤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5,15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12일부터 이날까지 1,368억원 매도 우위로 돌아서며 순매수 강도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정동휴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탄핵 이슈 초반에 증시 조정이 있었던 것처럼 미국의 정치 불확실성 확대는 새 정부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려는 코스피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이라며 “미국 의회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우위에 있어 당장은 트럼프가 파면될 가능성은 낮지만 탄핵 이슈가 지속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위험자산을 회피하며 국내 증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르면 6월부터 중국이 MSCI EM지수에 편입되는 것도 증시 불안 요인이다. 올 들어 중국 증시는 경기 부진 여파로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되며 한국 증시 대비 가격 메리트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MSCI 편입 후 이머징마켓에서 자금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 SK증권이 MSCI 내 한국지수와 중국지수를 2015년 1월 100포인트로 환산한 후 등락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2일 현재 중국지수는 100포인트 중반으로 120포인트 중반인 한국지수보다 약 20% 저평가돼 있다.
골드만삭스가 4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MSCI 신흥국지수의 글로벌 추적자금은 패시브 2,000억달러, 엑티브 1조3,000억달러 등 총 1조5,000억달러(1,500조원)에 이른다. 국내 증권가는 중국A주의 편입 비율에 따라 국내 증시에서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50조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 유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중국A주가 5% 편입되면 1조원, 100% 편입 시 10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했고 한국투자증권도 한국 주식에 대한 매도 수요를 5,000억~3조8,000억원으로 예측했다. 신영증권은 5% 편입 시 2조9,000억원, 100% 편입 시 50조원 안팎의 자금이 이탈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A주의 신흥국지수 편입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주식팀장은 “장기적으로 중국A주 편입이 100% 이뤄지면 국내 증시도 충격이 불가피하겠지만 중국이 최대 30%로 돼 있는 중국 A주의 현재 외국인 보유 한도를 단기간에 늘릴 가능성은 낮다”며 “일부 외국인의 선매도 가능성은 있지만 급격한 자금 유출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