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코칭] 膠柱鼓瑟(교주고슬)

동봉 스님·곤지암 우리절 주지
'침술·기타는 수행자와 안 어울려?'
계율에 얽매여 고지식한 사람은
조율 안돼 제 기능 잃은 현악기 닮아
타인 心身 치유 故 이태석 신부처럼
사람 간 관계 집중해 유연성 가져야

‘거문고 슬(瑟)’자는 ‘큰 거문고 슬(슬)’로도 쓰고 새긴다. ‘거문고’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비파(琵琶)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림씨로 풀 때는 ‘쓸쓸하다’ 외에 ‘엄숙하다’ ‘곱다’ ‘많다’를 뜻한다. 거문고 슬(瑟)자는 현악기의 모양을 본뜬 ‘각(珏)’과 소릿값에 해당하는 ‘필(必)’로 돼 있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1981년 초여름 서울 종로 대각사에 머물 때 클래식 기타를 즐기는 거사님이 찾아왔다. 나는 수행자이기에 기타는 물론 어떤 악기도 다루면 안 된다는 의식이 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비구계(승려가 된 남자 어른이 받은 계율)를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사미계(승려가 된 남자아이가 받은 계율)에 ‘노래하고 춤추지 말고 그런 곳에 가지도 말라’는 조목이 나를 제어했다.



당시 나의 사형(같은 스승 아래 자기보다 먼저 제자가 된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 중에 거문고를 즐기는 분이 계셨다. 클래식 기타를 즐기는 거사님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자 그가 말했다.

“스님은 교주고슬이십니다.”

“교주고슬요?”


“네, 스님. 스님은 교주고슬입니다.”

처음 듣는 말이라 해석을 부탁했더니 교주고슬이란 비파·기타·거문고 따위의 현악기의 기러기발(안족·雁足)을 아교로 붙여놓아 음조를 바꾸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교로 붙여 놓으면 조율이 안 된다. 피아노·기타·가야금·비파·거문고 따위의 현악기가 조율이 안 된다면 악기로의 생명은 없다.

수행자가 계율을 지킬 때는 으레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계율이 누구를 위해 있을까. 물론 수행자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다. 고지식해 꽉 막히면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고 무엇보다 대승불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방편바라밀(보살이 여러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 거사님에게 받은 이 말을 삶의 화두처럼 부여안고 살아왔다.

나는 그때 그날로 종로2가에 있는 ‘교향전자음악학원’에 수강신청을 마쳤다. 종로2가는 양우당 서적이 유명했는데 바로 그 옆에 있던 음악학원이다. 나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겠다고 등록하고는 닷새 만에 그만뒀다. 학원비가 아까웠지만 그냥 접었다.

그만두기를 잘했다고 평소 그렇게 여겼는데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나가 있으면서 비로소 지난날 기타를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기타뿐 아니라 어떤 악기라도 하나쯤 배워둘걸 하며 아쉬워했다. 나는 몸으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서 목탁을 치고 염불하고 기도하고 축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편이다.

1980~1981년 가을 사진으로 두 번이나 가작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행자에게 붙을 ‘사진작가’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어 1982년도에는 작품도 내지 않았다. 또 1981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배우던 침술조차 중도에 그만뒀다. 그 역시 수행자가 남의 옷을 벗기고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구제활동을 펴며 침술 공부를 그만둔 것을 참 많이 아쉬워했다. 이미 선종한 지 오래인 아프리카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 고(故)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로의 기능과 함께 기타를 잘 다뤄 현지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 어울렸는데 나는 그것이 없었다. 침술은 고사하고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다. 52개월 내내 교주고슬 때문에 아쉬워했다.

‘살도음망(殺盜淫妄)’을 네 가지 ‘바라이죄(비구나 비구니가 승단을 떠나야 하는 무거운 죄·斷頭罪)’라 한다. 불자로서 살인, 공금 횡령, 성폭행, 혹세무민 네 가지는 절대 범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머지 계율도 잘 지녀야겠지만 나처럼 교주고슬이 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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