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용 ‘남쪽의 기억, 416km’ /우영탁기자
입구에 들어가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사진이 인화된 하늘거리는 천이 원형 구조물에 걸려 있다. 조준용 작가의 ‘남쪽의 기억, 416km’이다. 평화로운 풍경처럼 보이는 사진은 실상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아버지가 찍은 것을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프로젝터로 영사해 촬영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대가로 받은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고, 조 작가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사진을 인화한 반투명한 천 뒤로 주변 풍경이 어렴풋이 비친다. 결국 베트남전에서 시작된 연결고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넘어 현재와 연결된 셈이다.다니엘 피르망 ‘플로렌스(태도)’ /우영탁기자
전시는 구 서울역사를 세 공간으로 나눠 ‘과거: 긍정시계’, ‘미래: 지향시계’, ‘현재: 쾌락시계’로 구성됐다.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가는 도중 겉옷을 반쯤 벗은 채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한 여성을 맞닥뜨리게 된다. 힘들어서 쉬는건지 혹시 우는 것은 아닌지 다독일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간 사람만 눈치챌 수 있다. 사람이 아니다. 실제 사람을 똑같이 본 떠 만든 다니엘 피르망의 ‘플로렌스(태도)’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을 통해 정지된 시간을 표현한다. 작가는 겉모습 뿐 아니라 인식하지 못하던 일상의 순간 그 자체를 포착했다. 정지된 행동이 오히려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역설을 만들었다. 올리비에 랏시 ‘델타’ /우영탁기자
커튼을 열고 들어가는 미래의 공간에서는 빨간 불빛을 뿜는 거대한 구조물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올리비에 랏시의 ‘델타’는 그리스 알파벳의 네 번째 문자인 Δ(델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삼각형의 위 꼭짓점을 뜻하는 델타는 문(門)을 뜻하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작가는 마주 보고 있는 구조물 중 한 쪽에 점점 다가오는 사각형을, 반대쪽에 점점 멀어지는 사각형을 투사해 관람객들에게 심연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중앙홀 바닥에 설치된 홍범 작가의 ‘기억의 잡초들’, 움직이는 원형 구조물에 투사된 그림자를 통해 감각과 기억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이예승의 ‘숨바꼭질’ 등 17팀 작가의 76점 작품을 숨은그림 찾듯 뒤지며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전시 뿐 아니라 박정자의 낭독콘서트 ‘2017 영영이별 영이별’, 1960~80년대 인기 TV프로그램 ‘쇼쇼쇼’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퍼포먼스그룹153의 공연, 고장난 망원경을 통해 초현실적 상상에 접근하는 팀 스푸너의 영상 인형극 등 공연과 연극, 영화상영이 다채롭게 마련됐다. 관람 무료.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