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문 대통령에게 건네는 축하와 허니문은 여기까지다. 냉정하게 시장을 보면 ‘바이 코리아’는 없었다. 외국인투자가는 올 들어 LG전자·현대차·현대모비스·KB금융 등 업종 대표주들을 5조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련 없이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 외국인은 시장을 사지 않았다. 우량종목을 사들였을 뿐이다.
외국인들은 왜 지금 한국의 우량주를 사들일까. 싸기 때문이다. 주가가 기업의 회사 주식 1주당 수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한국은 9.6배로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고 신흥국인 인도(15.9배)나 필리핀(17.8배)보다도 낮다. 외국인은 우량주를 사들이며 지난 몇 년간 쌓아 놓은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에 대한 욕심도 내고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의 매수세가 집중된 종목은 대부분 최근 2년 연속 현금을 늘린 대기업들이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과 현금성 자산 1조원이 넘는 45개사 가운데 2년 연속 현금이 증가한 18개사의 올해 주가상승률은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평균 18.2%에 달한다.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12.9%)보다 높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으로 나타나며 주가를 올렸다. 지난 2년간 15조2,700억원의 현금이 늘어난 삼성전자는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에 나섰다. 결국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10종목이 자신의 계좌에 하나라도 없다면 이번 상승장에도 당신은 루저(패배자)일 뿐이다.
새 정부에 사상 최고치를 치닫는 주식시장은 우리 경제의 견고함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주식시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코스피의 저평가를 지정학적 리스크와 함께 기업의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의 탓으로 돌렸다. 아예 이 같은 요인을 상수로 두고 글로벌 경제와 수출 등을 변수로 만들었다. 우리 내부에 저평가 요인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정부의 깜짝 인사로 꼽히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과거 활발한 소액주주운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은 기대를 보내고 있다. 인사를 발표하자마자 지배구조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들썩거렸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재벌 적폐청산’을 앞세워 강력한 대기업·재벌 개혁을 진행한다면 우리 내부의 저평가 요인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 과정에서 주주 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동일하게 보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미 착각에 빠진 새 정부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역할과 권리를 강화하고 소수주주들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가 여당의 정치인들은 미국 월가를 모델로 하는 금융시장구조 재편 및 기업지배구조 재편을 요구한다. 월가의 주주 자본주의와 주주 민주주의가 동일하고 이를 다시 경제민주주의와 동일시한다. 월가의 주주 자본주의가 사모펀드와 특정 투자은행(IB)에 지배당하며 투자가 아닌 투기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의 기생충으로 전락했음에도 말이다.
정부의 공적 역할을 강조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화폐자본에 뿌리 깊게 내재한 투기적 속성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이를 위해 ‘투자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금융이 투기와 약탈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로 주식시장이 금융자본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빼가는 자금유출의 창구가 돼서는 안 된다.
외국인투자가는 한국 시장을 사지 않는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경영권 승계의 약점을 잡고 삼성전자에 30조원의 특별배당을 요구했듯이 언제든 약탈의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 이를 막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h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