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뇌물 혐의를 다루는 첫번째 정식 재판이 23일 오전10시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대법정 417호에서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에 이어 공개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는 헌정사상 세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3시간 남짓한 재판 내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뇌물 강요에 대해 “검찰은 기업들이 700억원 넘는 돈을 재단에 출연하게 한 뒤 사업을 수주하려고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K를 만들었다는데 조그만 회사들이 대통령 임기 내에 그 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박 전 대통령은 범행 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면서 “두 사람이 공모했다고 하지만 공소장 어디에도 구체적인 공모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기업 청탁을 들어주고 뇌물을 받았다는 논리도 부정했다. 유 변호사는 롯데가 면세점 면허를 얻는 대가로 75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내기로 했다는 검찰 주장에 “박 전 대통령은 면세점을 늘리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또 CJ헬로비전 합병을 추진하던 SK에 뇌물을 요구했다는 혐의에도 “오히려 대통령은 CJ헬로비전 합병을 부정적으로 봤다는 내용이 기록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은 문화계 지원 배제 사안을 보고받지 않았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일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 핵심 요인인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해서도 유 변호사는 “최씨에게 연설 관련 의견을 물었을 뿐 고위직 인사 자료 등을 전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도 직접 “변호인의 의견과 같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경재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최씨는 울먹였다. 그는 “40여년 알고 지낸 박 전 대통령이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인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은 뇌물이나 이런 범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이 재판이 정말 진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주고 나라를 위해 살아온 대통령으로 남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내내 최씨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최씨와 재판을 따로 받게 해달라는 박 전 대통령 측 요청을 거부하고 오는 29일부터 재판을 병합하기로 했다.
이날 대법정은 방청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친박 단체인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 1,000여명(주최 측 추산)도 법원 인근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외쳤다.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법원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종혁·박우인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