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6 동부산권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작은 나라가 모든 국민에게 대학까지의 무상 교육과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학령기 아동들에게 무상 대중교통을 제공하고 있다. 수십년간 이 나라가 다각화된 경제와 민주적인 정치제도,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인 모리셔스 얘기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칼럼집 ‘거대한 불평등(The Great Divide)’에서 모리셔스는 찬탄의 대상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신랄하다. “오늘날 미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시스템은 불평등을 낳도록 설계된 짝퉁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게 가장 어울린다”는 식이다.
왜 미국 자본주의가 짝퉁이라는 걸까.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스티글리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거론하며, 미국 자본주의는 그 때 가해자인 은행들에게는 후한 혜택을 베풀면서도 집과 직장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을 거의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공정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조세 원칙의 붕괴는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예컨대 부시가 추진한 부자 감세 조치는 경기를 부양하기보다는 부자들의 지대 추구 행위를 조장했고, 지대 추구 사업이 번창하면서 오히려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 불평등은 정치 불평등을 낳고, 정치 불평등은 다시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미국에 고착화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나쁜 정부 탓이었다.
최근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2017 뉴딜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안내책자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경제DB
따라서 짝퉁 자본주의는 정치만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경제의 성장을 원한다면 좌파를 지지하라”고 외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성장은 단순히 국민 소득 증가 여부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정치주체는 좌파 밖에 없다. 둘째 인터넷과 생명공학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지금의 경제에서는 사회기반 시설과 교육의 제공, 심지어는 기업가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것을 정부의 중요한 책무로 여기는 좌파만이 성장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금융개혁! 창업, 일자리 박람회’에서 여고생들이 채용공고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서울경제DB
스티글리츠는 일자리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주목할 부분은 새롭게 성장을 이루어야 할 교육과 의료 서비스 부문인데 이 부문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수익성이 높을 뿐 아니라 노동 집약적인 공공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새 케인스학파 중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스티글리츠의 거침없는 주장을 다 읽고 나면 이런 물음이 맴돈다. 그동안의 한국 자본주의는 짝퉁이었나?,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당장의 대답은 성급한 감이 있다. 시장의 기능과 정부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게다가 스티글리츠가 찬탄해마지않았던 모리셔스까지 이상 기후 등의 원인으로 경제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지 않나. 경제엔 변수가 많다. 2만5,000원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