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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탄핵 9개월 만에 또다시 현 대통령 탄핵이 가시화하면서 국제사회는 브라질 정가를 집어삼킨 ‘라바자투(Lava jato·고압세차)’와 브라질의 뿌리 깊은 ‘부패병’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라바자투는 지난 2014년 3월 브라질 연방판사 세르지오 모로가 시작해 3년째 이어져온 반부패 수사를 일컫는 말로 브라질 정치권과 재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어느덧 ‘현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패 수사’로 발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현재까지 호세프와 테메르를 포함해 브라질 전현직 대통령 5명이 기업비리 스캔들과 관련돼 수사 물망에 올라 있으며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의장도 부패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남미 ‘좌파 아이콘’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역시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 기업 비리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있다.
브라질이 이처럼 초대형 스캔들에 휘말린 것은 군부독재가 끝난 후 지난 30여년 동안 사실상 동일한 정치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며 풍부한 원자재를 배경으로 한 초대형 기업들과의 정경유착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FT는 뇌물과 정부 보조금을 매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 브라질의 ‘제도화된 부패(systemic corruption)’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30개가 넘는 정당과 지방의회·연방의회 등으로 나뉜 복잡한 정치체제도 ‘손쉬운 뇌물’을 부르는 원인이 됐다.
브라질 우드로윌슨국제센터의 파울루 소테루는 “브라질 정치 시스템은 가장 높게 가격을 매긴 뇌물 공여자에게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시스템(법)을 판매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브라질 정경유착의 뿌리가 브라질의 근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1822~1889년까지 지속된 브라질 군주체제에서 공화체제를 두려워한 당시 왕가가 국민을 위한 필요시설이나 시스템 구축을 외면하며 개인적 유착 등 정실 관계에 더 기초하는 사회 풍토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세기 들어서도 정부와 기업의 굳건한 유착관계가 유지되고 경제적 불평등 확산과 과도하게 비대한 관료체제가 지속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부패 시스템의 고리가 라바자투 수사를 계기로 끊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호셰프 대통령이 반부패시위에 못 이겨 만든 브라질 최초의 ‘반부패법’에 포함된 ‘형량협상’ 기능이 정계와 재계 간의 단단한 유착관계를 약화시켰다며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기도 하다. 테메르 대통령이 쿠냐 전 하원의장의 입을 막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려 했다는 JBS의 녹음 내용이 검찰로 넘어간 것도 이를 대가로 형량을 줄이려 한 JBS 측의 선택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1992년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브라질 대통령 탄핵과 2005년 룰라 정부 당시 노동자당의 야당 매수사건인 ‘멘살라웅 스캔들’, 호세프 대통령 탄핵까지 굵직한 부패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부패 청산에 대한 기대가 나왔지만 비리가 반복되고 있다며 “여러 번 기회를 놓친 브라질이 현대 역사상 최대의 부패 스캔들을 거쳐 국가개조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평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