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학성동에서 발견된 고려 초 철불로 약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이례적인 보물1873호 철조약사여래좌상(오른쪽)과 고려예술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보여주지만 국내에 4점 밖에 전하지 않는 보물 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불화는 고려인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신앙심까지 더해져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귀한 만큼 탐내는 이가 많았고 현재는 전세계에 160여점 밖에 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구원을 청하는 중생에게 자비의 손을 내미는 ‘관음보살’은 삼국시대 이후 고려 때 가장 인기였다. 하지만 고려 불화 가운데 관음보살을 찾아온 선재동자를 그린 일명 ‘수월관음도’는 46점만 남았고 그마저도 국내에는 4점뿐이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수월관음보살도는 이토록 귀한 까닭에 보물 제1903호로 최근 지정됐다. 화려한 색채의 흔적, 잠자리 날개 같은 비단옷이 잡힐 듯 말 듯 속을 태운다.문화재청은 지난 3년간 새롭게 보물 및 국보로 지정한 문화재 50건을 공개 전시하는 특별전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중근세관에서 열고 있다.
보물 1864호로 지정된 16세기 ‘소상팔경도’는 각각 높이 91㎝, 폭47.7㎝의 그림 8점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는 8폭 병풍이던 것이 분리됐다. 그 무렵 동아시아 전역에서 유행한 소상팔경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의 소수와 상강이 합류하는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그린 것으로 계절과 시간대의 변화 속에 안빈낙도의 선비정신까지 담아냈다. 게 발톱처럼 그린 나뭇가지, 짧은 선을 찍어 표현한 산·바위의 표면 처리가 기막히다. 재일동포 김용두 씨가 2001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재일교포가 국가에 기증해 보물1864호로 지정된 소상팔경도(왼쪽) 앞쪽으로 종로구 청진동 발굴조사에서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한꺼번에 출토된 백자 항아리 3점이 전시 중이다.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은 신라 선덕여왕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643년에 동아시아 최고 높이인 80여m로 만들게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지금은 흔적도 없다. 보물 1870호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는 872년 실시된 탑 보수공사 후 심초석(탑 중심기둥 받침돌) 안에 넣어둔 사리함에 새겨진 기록이다. 탑의 건립과 수리 경위가 소상하게 적혀 사라진 탑을 짐작할 실마리를 제공한다.전시는 크게 신앙·기록·삶을 주제로 나뉜다. 강원도 원주 학성동에서 발견된 보물 1873호 철조약사여래좌상은 국내 철불로는 드물게 약그릇을 손에 들고 있다. 신라말에서 고려초 불상으로 추정된다. 철이라는 소재 면에서나 견고한 자세에서 풍기는 묵직함과 약그릇이 상징하는 자비로움이 든든하지만 자상한 느낌을 풍긴다. 금강산(강원도 회양 장연리)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보물 18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옷부터 머리장식까지 더없이 화려하다.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표면이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무렵의 불상으로 고려의 국제 관계, 티베트계 불교미술 등의 영향으로 이국미를 물씬 풍긴다.
종로구 청진동 발굴조사에서 형태를 유지한 채 출토된 백자 항아리 3점도 명품이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궤’와 ‘한국의 유교책판’도 볼 수 있으며, 보물이던 동의보감은 국보 제319-1호로 승급됐다.
전시작 상당수는 국립박물관 소장품들이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품도 여럿 포함됐다. 국가지정문화재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공식인증’의 뜻이며 소유 여부는 별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개인 소유여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전시가 어렵다. 개인 소유의 국가지정문화재는 소장자가 해당문화재를 관리·보호하는 대신 문화재청은 국제적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외반출을 제한하는 등 국가의 국보, 보물을 챙긴다. 전시는 7월9일까지.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