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사대결로 치닫는 비정규직 해법을 경계한다

민주노총이 지난주 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고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같은 민감한 노동현안을 ‘지금 당장’ 해결하라는 요구를 쏟아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대중집회에서는 “정국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이라며 본격 투쟁까지 선포했다고 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투쟁을 외치는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 정부가 들어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력이니 하루라도 빨리 밀린 빚부터 갚으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촛불시위 국면에서 단물만 빼먹지 말고 자신들의 요구를 100% 수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여권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연일 대기업의 책임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 등 핵심 실세들은 “귀족노조도 잘못이지만 잘못된 재벌의 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재벌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일찍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사회적 합의 없이 무리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비정규직 운영방식이 기업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다 노동 유연성이라는 근본 배경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덜컥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고 실적 위주의 속도전에 나서니 노사 갈등과 산업현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빚어지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고용 주체인 기업의 의견이 반영돼야만 모두가 윈윈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 마지못해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가 고임금과 경영난을 감당하지 못해 고용·투자를 줄줄이 취소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모처럼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와 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경제의 양대 주체인 정부와 기업이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 상황은 여러모로 바람직스럽지 않다. 소통과 통합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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