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다. 문 대통령은 30일 이미 설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가 비공개로 국내에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발사대 4기가 비밀리에 국내에 반입, 보관돼 있는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한 것은 전 정부 외교·안보·국방 라인의 국기문란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문 대통령이 이 사실을 보고받고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전한 것으로 미뤄볼 때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상상할 수 없는 국기문란 사건으로 판단하고 엄중히 처리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31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다시 받기로 해 이번 사건이 전면적인 국방 개혁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한미의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투명하지 않게 이뤄진 게 사실이다. 특히나 한국의 대선 일정에 맞춰 배치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공론화 과정이 없었던 것은 물론 경북 성주 골프장을 군사시설에 적합하게 리모델링하기도 전에 성급히 사드 구성품이 배치됐다. ‘대선 전 사드 알박기’ 얘기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사드 배치 결정은 박근혜 정부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때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군 출신에 ‘매파’로 분류되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배치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당하자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사드 조기 배치론이 흘러나왔다.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이 이뤄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비해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외교·안보 분야의 한 고위관계자는 “새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드 배치를 대선 전에 끝내는 게 옳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미 군사당국은 헌재 결정 직전인 3월6일 사드 장비를 오산 공군기지에 반입하고 대선 레이스 중인 4월26일에는 경북 성주 부지에 사드를 전격 배치했다.
그러나 한미 군사당국이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알린 것과는 달리 사드 발사대 2기뿐만 아니라 4기를 추가로 한국에 들여와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새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일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특히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조차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이 벌어진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국가안보실장도 국기문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 전 실장은 17일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했을 때 수행하는 등 문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서면이든 구두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추가적인 사드 발사대가 국내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은폐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정권의 한 안보 분야 당국자는 “사드 배치는 김 전 실장의 신념이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서둘러 사드 배치를 완료해 정권이 바뀌어도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국충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전 실장은 새로운 무기체계 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시절에는 하위직들에게도 무기체계 얘기를 격의 없이 들려줄 정도로 신무기 도입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그의 신념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사드에 대해 “다음 정부에 맡겨달라. 해결할 방도가 있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취임해서는 전화외교와 특사외교를 벌이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이 때문에 이번 보고에 따른 충격과 실망감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진상조사 과정과 결과를 입체적으로 판단하고 후속 조치를 단행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