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장관에 지명된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전, 건강의 국가 먹거리 시스템 어떻게 만들까’ 세미나에 참석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연합뉴스
한진해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하루 전인 지난 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나왔다. 당시 국회 농해수위를 이끌던 김영춘 상임위원장이 의사봉을 내려놓고 법안 발의를 위해 연단에 올라선 것이다. 교섭단체 간 중재가 주요 업무인 상임위원장이 직접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해운법 개정안이었다. 개정안에는 해운거래소 설립을 통해 해운 산업을 지식기반산업으로 재도약시키겠다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해수부 장관 후보자 내정 직후 그가 던진 일성도 해운 산업의 재도약이었다. 그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한진해운 파산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해운 산업 전반의 불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와 해수부의 인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항간에서 김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2003년 ‘지역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다. 이 때문에 행정자치부 장관에 지명된 김부겸 후보자와 함께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2006년 오거돈 당시 해수부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설로 40대의 나이에 해수부 장관 하마평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책임지고 불출마를 선언했고 2011년 가족과 함께 고향인 부산으로 낙향한다. 2012년 19대 총선, 2014년 부산광역시장 출마로 부산의 문을 연거푸 두드렸지만 고배를 마시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2전3기’ 끝에 당선된다. 이후 1년간 농해수위를 이끌며 세월호 인양, 해운 산업 구조조정, 바닷모래 논란 등 항상 해수부 관련 이슈의 최선두에서 활약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농림해양정책위원장을 맡아 새 정부의 해양정책을 설계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 지명 이후 해수부 내부에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수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회 상임위를 이끌 때 여야 의원들의 이견을 조율해 굉장히 합리적으로 쟁점사안들을 잘 처리했다”며 “또 중진 의원을 부처에 보냈다고 하는 것에서 해수부 관련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해운 산업 재건을 위한 정책이 가장 큰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해운 산업 구조조정 당시 금융부처에 밀려 해수부가 목소리를 너무 내지 못했다고 질타를 많이 했다”며 “해양정책이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도 김 후보자 앞에 놓인 현안이다. 그의 지명 소식이 전해진 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도 “적임자가 내정됐다”며 기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지명 이후 “위기에 처한 해운, 항만 수산업을 재건하고 지속 가능한 해양자원의 이용과 보전, 그리고 해양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해양 강국을 실현해나가겠다. 또 세월호 수습의 마무리와 진상규명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약력
△1962년 부산 △고려대 영문과 졸업 △고려대 총학생회장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16·17·20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