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액·장기 연체 빚 탕감- 찬성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변제능력 상실자도 경제활동 길 터줘야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채무자의 소액·장기 연체 빚을 탕감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의 소액, 10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 소각을 공약했고 금융위원회는 공약 이행 계획을 ‘100일 플랜’으로 보고할 계획이다.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개인 채무자의 재기를 돕고자 채무 감면을 확대하는 후속조치도 내놓았다. 현재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소액 장기연체 채권의 잔액은 지난 3월 말 현재 4조5,000억원에 채무자는 123만명을 넘는다. 빚 탕감 찬성 측은 변제능력이 있는데 고의로 상환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정리해 상환능력 상실자들도 경제활동과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빚을 탕감해줄 경우 도덕적 해이로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 큰 혼란이 생기고 성실 채무자들에게 상실감과 위화감만 줄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액·장기 연체 빚 탕감에 대한 대표적 오해가 도덕적 해이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오해는 채권자 권리 중심 사회질서의 산물이다. 문 대통령 공약의 정확한 내용은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의 소각이다. 여기서 10년 이상 연체 채권은 소멸시효가 만료된 채권을 말한다. 형사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있고 민사에는 소멸시효가 있다. 즉 일정 기간이 지나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된다. 채권에 소멸시효 기한을 설정한 이유는 채권, 즉 권리를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즉 소멸시효 채권이란 소득이나 재산이 없어 변제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채권을 의미한다. 채권에 따라 소멸시효 기간이 다르지만 일반 채권채무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대개 채무를 변상할 능력이 있으면서 상환하지 않는 경우는 가압류나 가처분·압류 같은 방식으로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이 가진 대부분의 소액 장기 연체 빚은 사실상 회수하기 어려운 채권이다. 그런데 그동안 은행들이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대부업체 같은 제3자에 헐값으로 팔아 벼랑 끝에 몰린 연체자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 재기를 가로막아왔을 뿐 아니라 불법적인 채권추심의 원인이 되곤 했다.
그동안 소멸시효 만료 채권에 대한 자동소각을 법제화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채권 소멸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제3자 양도로 손실을 최소화하는 채권자의 권리남용 행위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때는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는 리스크(손실)를 감안한다. 은행들은 빌려준 채무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상각 처리해 재무제표상에서도 채권을 없앤다. 즉 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장부상 지워진 채권이기 때문에 감면한다고 손실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소멸시효가 도래했으나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은 이른바 ‘소멸시효 포기 특수채권’을 감면한다며 생색을 내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채권자의 갑질’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시중은행이 채권자의 권리남용 행위를 한 것은 차치하고 금융위원회나 예금보험공사 등이 이를 방치하다가 새 정부 앞에서 뒤늦게 ‘코드 맞추기’를 하는 모습은 ‘영혼 없는 공무원’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예보가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채무자의 소멸시효 임박 채권은 시효 추가 연장 없이 그대로 소각 처리하기로 하고 채권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예보 홈페이지나 안내장, 문자 메시지 등으로 해당 사실을 채무자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기로 했다는데 왜 그동안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번 기회에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은행들이 자동적으로 감면해 채무자가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

사실 문 대통령의 공약 내용이라고 해서 1,000만원 이하에 집착해야 할 이유도 없고 10년 이상이라는 모호한 법적 기준에 제약돼서도 안 된다. 즉 변제 능력이 있는데 고의적으로 상환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각을 원칙으로 해야 채권자의 책임을 정상화할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서민정책금융을 제도화해야 한다. 현재의 금융시장은 자금에 대한 접근기회와 비용 등에서 경제적 취약계층에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만든 것이 햇살론·새희망홀씨·미소금융·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상품들이다. 그런데 생색내기에 불과할 정도로 4대 금융상품은 규모가 너무 작다. 게다가 말이 좋아 서민의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서민금융이지, 높은 금리 부담으로 ‘채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빚을 내 빚을 갚는 ‘채무노예’ 가구가 증가하는 배경이다. 많은 국민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가계보다는 기업과 은행, 경제적 취약계층보다는 자산가와 고소득층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계 중 신용도와 담보력이 취약한 취약계층의 자활을 위해 중소기업처럼 한국은행이 저금리로 금융이용 기회를 확대해주는 서민정책금융을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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