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의 소액, 10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 소각을 공약했고 금융위원회는 공약 이행 계획을 ‘100일 플랜’으로 보고할 계획이다.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개인 채무자의 재기를 돕고자 채무 감면을 확대하는 후속조치도 내놓았다. 현재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소액 장기연체 채권의 잔액은 지난 3월 말 현재 4조5,000억원에 채무자는 123만명을 넘는다. 빚 탕감 찬성 측은 변제능력이 있는데 고의로 상환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정리해 상환능력 상실자들도 경제활동과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빚을 탕감해줄 경우 도덕적 해이로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 큰 혼란이 생기고 성실 채무자들에게 상실감과 위화감만 줄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생활고로 일가족 3명 동반 자살’ ‘빚 때문에 가족 동반 자살’ 등의 기사를 접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 사연을 읽어보니 안정적으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던 한 집안의 가장이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하면서 20년 동안 빚 독촉을 받다가 결국 가족 동반 자살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법적으로 금전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있지만 이는 채권에 대한 행사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실상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는 사회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와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소외된 사람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다양한 서민금융정책을 만들었고 채무조정 또는 빚 탕감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조정, 즉 빚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정책을 펼쳤고 이번 정부에서도 국민행복기금이 관리하고 있는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된 소액 장기 연체로 선별된 일부 채무자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과연 이러한 정책이 앞에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루 일당을 쪼개 힘들게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채무자, 9년 동안 연체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채무자,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 관리를 받지 못하는 채무자들은 오히려 상실감이 더 클 것이고 위화감까지 발생할 수 있다. 아마도 다음 정부의 더 큰 빚 탕감 정책을 기대하면서 연체를 계속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제도적 측면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서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비용은 무상으로 지급해야 한다. 연체가 발생하면 금융회사는 부실채권이 늘어나 자산 건전성이 악화되고 서민들은 빚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두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또 불법적 채권추심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정부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든 채무자가 빚에서 해방되는 법적 채권 소멸시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개정이 필요하다. 옛 선인들은 희년(禧年·50년마다 공포된 해방의 해)이 되면 땅과 집의 회복, 노예 해방, 채무 면제가 이뤄지면서 정체된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사회개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 우리가 이러한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