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고등학교 자기주도학습실에서 학생들이 개별 학습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복고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의 한 교실은 저녁 시간이 다가왔는데도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은 이후에도 오후9시까지 자리에 남아 공부에 열중했다. 한 학생이 문제를 풀다가 막혔는지 손을 들자 담당 과목 선생님이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학생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들은 경복고등학교가 전국 최초로 실시한 ‘자기주도학습 탐험대’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사교육 받지 않겠다” 서약 대상
매주 2회 강의 듣고 개별 학습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 몸에 배
학원교육 필요성 전혀 못 느껴”
자기주도학습 탐험대는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학교생활 및 진학에서 모두 성공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경복고가 야심 차게 도입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일주일 중 4일 이상 자율학습을 신청한 학생 중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매주 2회(화·목요일) 자기주도학습실에 모여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한 기본 강의를 듣고 개별 학습계획 및 실천사항에 대한 일대일 점검을 받는다.
어느덧 도입된 지 1년이 지나면서 학생과 교사 모두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준묵(18)군은 “중학교 때 수학학원을 다녔지만 문제를 풀어주는 수준에 머물다 보니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부족하고 자꾸 학원에서 지시한 대로 허겁지겁 따라간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지금은 나에게 필요한 분야를 직접 결정하고 수학·과학 등의 과목은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될 때까지 맘 편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 공부가 훨씬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들 학생은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위수영(18)군은 “공부는 어차피 자기가 직접 하는 것인데 부모들이 시키는 대로 비싼 돈 들여가며 학원만 다니기에 급급한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며 “특히 자기주도학습 탐험대에 속한 학생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께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어서 학원교육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학문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위군은 “수학을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오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인터넷에서 수학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교과서에 없는 다양한 그래프를 접하며 실제로 문제풀이 과정에 적용해보는 게 흥미롭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자기주도학습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성적이 오르는 학생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참가자 중 절반은 국어·영어·수학 3과목 평균 점수가 1학기 중간고사보다 2학기에 접어들며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성적 향상이 두드러진 일부 학생의 경우 1학기 중간고사보다 평균 점수가 20점 이상 오르기도 했다.
성적 오르는 학생들 점차 증가
교사들 “학습 열의 상승 성과”
김성회 경복고 수학 수석교사는 “혼자서 공부하다 막히면 시간 낭비가 있을 수 있지만 즉각 선생님들이 도와줘 공부 효율을 높이고 있다”며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평소 수업 때도 과거보다 질문이 2~3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학습에 대한 열의가 올라간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원휘 경복고 교장은 “고등학교 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놓지 않으면 대학에 들어가도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요즘 학생들이 갈수록 자기관리능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