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관련 의혹을 일부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여론을 이끌었던 영국 극우정당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전 대표가 지난해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러시아 커넥션’이 대서양을 넘어 영국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와의 내통 의혹 수사를 지휘하다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출석이 오는 8일(현지시간)로 예고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갈수록 번지는 러시아 유착 의혹의 불길을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러시아 해커들이 지난해 미 대선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해커들을 “예술가와 같다”고 묘사하며 “그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느낌에 따라 목표물을 선택하며 러시아를 대신해 자국의 이익이 위협을 당한다고 느꼈을 때 행동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는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노린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e메일 해킹에 러시아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민주당이 지어낸 소설”이라고 극구 부인하던 데서 한발 물러나 처음으로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지난 1월 미 정보당국은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의 승리를 돕기 위해 DNC 간부들의 e메일을 해킹, 폭로하는 등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이날 푸틴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은 오는 8일 코미 전 국장의 청문회 증언을 앞두고 미 정치권의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코미 전 국장의 ‘작심’ 증언과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WP)는 미 의회 청문회와 관련해 “코미 전 국장의 증언 20분은 청문회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며 “그는 청문회 증언에 매우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 핵폭탄급 발언을 예고한 바 있다.
여기에 일각에서 러시아 커넥션에 영국 극우 독립당 전 대표인 패라지가 관련돼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러시아 커넥션이 워싱턴에서 유럽으로 전선을 넓히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날 영국 가디언은 미 수사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패라지 전 대표가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관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로 분류돼 있다며 “러시아와 위키리크스, 줄리언 어산지, 트럼프를 한데 묶어서 보면 패라지가 중심에 있다”고 보도했다. 패라지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을 주도해온 극우 인사로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지지하고 취임식에도 참석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푸틴”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해왔다.
힌편 러시아는 지난달 초 프랑스 대선과정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떨어뜨리기 위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지지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유럽연합(EU) 통합을 저해하기 위해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