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 예술감독은 취임 후, ▲오디션 제도의 정례화 시즌 ▲ 데이터 베이스 구축 ▲ 개런티 책정의 객관성 확보 ▲ 레퍼토리 시스템 확립 및 지역 공연 활성화 ▲ 전문 영상물 제작 및 DVD유통 등 모두 5가지 플랜을 발표했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 /사진=조은정 기자
◇ 가치가 빛나는 기초 작업...데이터베이스 구축약 2년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김 단장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우선, 5가지 플랜 모두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겠다. 플랜이 완벽히 이뤄졌는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 중에서도 김단장은 ▲ 데이터 베이스 구축 ▲ 레퍼토리 시스템 확립 및 지역 공연 활성화 부분에서 괄목할만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단번에 이뤄질 수 있는 플랜이 있고, 중장기적으로 더 생각을 해야 실현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요. 임기동안 그 구별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이뤄나가야 할 플랜들이 많아요. 그 중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데이터베이스 작업입니다.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지금은 빛나지 않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말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는 기초 작업이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국내 및 해외 성악가 리서치 외에도 의상 디자이너, 무대세트 디자인, 조명 디자인, 영상 디자인, 안무가까지 20개가 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서 자료를 만들고 있어요. 단순히 유명한 이들을 찾는 게 아니라 숨어있는 인재들을 찾는거죠. 그때 그 때 필요해서 찾는 게 아니라 공연에 맞는 이들을 바로 섭외할 수 있게 비교 분석 해 놓은 자료들입니다.”
◇ 레퍼토리 시스템 확립이 왜 절실한가?
레퍼토리 시스템 확립이란 플랜 역시 김단장이 공을 들인 안이다. 김학민 단장은 취임 후 첫 작품이었던 ‘진주조개잡이’를 2년 만에 다시 들고 나타났다. 지난 5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파쵸’ 역시 성공적으로 재연한 김 단장은 “재공연이 정말 중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며 “레퍼토리 공연의 중요성을 관객들은 물론 오페라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오를란도 핀토파쵸’(이하 오를란도)의 재연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은 이유는 업그레이드에 보다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성악가, 음악, 안무는 물론 드라마적인 구성 역시 디테일하게 수정을 했다. 7각 관계를 다룬 내용이니만큼 마지막은 ‘사랑의 대축제’로 막을 내린다.
“‘오를란도’ 초연이 끝나자마자 연출자 파비오 체레사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이메일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을 하나 하나 적었어요. 이번 재공연에서 그 점들이 고쳐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도 분명하게 전달했어요. 그렇게 공연이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이번 관객 반응을 보면서 저희들이 더 노력할수록, 관객들이 점점 오페라를 좋아하게 될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특히 초연에 비해 관객이 늘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관객들에게도 낯선 비발디 오페라 란 점, 예술의 전당이 아닌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란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는데, 그런 우려는 빗나갔어요. 그래서 나름 성공했다는 말이 나온 듯 합니다.”
제8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국립오페라단이 3~4일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다시 올리는 ‘진주조개잡이’역시 코러스와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다 액티브하게 수정해 재미를 더했다. 이젠 관객의 평가만 남겨놨다.
김 단장은 시즌 프로그램도 대중적 오페라, 숨겨진 좋은 오페라, 난이도가 있는 오페라로 각각 나누고 3분의 1씩 고루 돌아가도록 했다. 지난 4월엔 작곡가 무소륵스키가 완성한 유일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올려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국립오페라단이 아니면 올릴 수 없는 작품이다”는 관객들의 감탄이 쏟아졌던 작품이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
◇ ‘모두를 위한 국립오페라단’의 첫걸음은?2029년까지 이미 레퍼토리 구상을 한 김 감독은 “재공연과 신작이 적절히 섞이도록 안배를 하고 있다”고 계획을 귀띔했다. 일년에 2개 정도는 신작으로 나머지 4개는 레퍼토리 작품으로 안배를 하게 되면 예산을 줄일 수 있음은 물론 오페라 관객층을 더 끌어올 수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그는 한번 만들어진 것을 다듬고 개선시키는 작업보다는 ‘신작’에만 혈안을 올려서는 ‘모두를 위한 국립오페라단’이라는 방향성과도 맞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세계의 어느 오페라단을 가 봐도, 정말 극단적인 예외를 빼놓고는 레퍼토리 중심으로 공연을 플랜을 세워놨어요. 50퍼센트는 자기 레퍼토리를 올리고, 그 다음에 뉴 프로덕션 신작을 추가하는 게 합당한 것 같아요. 현재는 저희 국립오페라단 레퍼토리가 워낙 제한적이에요. 그래서 레퍼토리를 넓혀가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중성 난이도를 상중하로 세분화해서 재공연 텀을 계획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작품은 2~3년에 한번씩, 난이도가 있는 작품은 5년에서 7년의 텀을 두면서 계획을 세우니 대략의 레퍼토리 틀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준비된 공연 플랜을 세워놓면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효과를 예상할 수 있어요.
재공연을 하면 3분의 1 정도의 예산으로 공연을 올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신작 한 편에 10억에서 15억원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재공연을 하게 되면 5억에서 7억 5천 가량의 예산이면 올릴 수 있어요. 그 말은 곧 신작을 한편 올릴 예산으로 재공연시엔 2편에서 3편까지 올릴 수 있다는 의미죠. “
◇ 레퍼토리 시스템 정착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창고의 효율적 활용
레퍼토리 시스템의 정착을 안착시키기 위해선 무대 세트를 보관하는 창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레퍼토리 시스템이 정착이 안 된 상태에선 신작 무대 세트를 3년 정도 보관하다 공간이 부족해지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창고보관비를 낭비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던 것.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단체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였다. 김 단장은 국립오페라단이 레퍼토리화 시킬 작품을 15개 가량 리스트업해서 창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무대 세트를 보관 할 창고비 예산 데이터는 물론 지방 공연 활성화를 위한 극장의 사이즈도 점검 역시 빼놓지 않았다.
“국립오페라단 무대 저장 창고가 용인하고 여주에 700평, 600평, 300평 이렇게 3개가 있어요. 700평 창고엔 무대 6개가 들어 갈 수 있어요. 60평에서 70평 정도 공간이 필요한 한 세트를 보관하는데 드는 경비가 1년에 1천만원 가량이 듭니다. 사실 무대 세트를 새롭게 만드는데 1억에서 2억 가량이 드는데, 5년 안에 그 공연 그 세트를 재활용해서 재공연화하면 남는 장사란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전처럼 무조건 공간이 있으면 보관하는 비효율적 개념이 아닌, 공연을 처음 올릴 때 이 작품을 레퍼토리화 할 것인지 여부를 바로 결정하는거죠. 하기로 결정이 나면 무조건 5년에서 7년 정도 보관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레퍼토리 시스템, 롱텀 플랜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
“폼 나는 프로젝트보다 좋은 오페라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김단장의 계획은 평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립오페라단을 바라보는 오페라 관계자들의 평가는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임기 초반 많은 포부를 말씀드렸던 걸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레퍼토리의 균형 있는 안배, 국민을 위한 오페라 오디션 제도의 정착, 성악가들을 다양하게 포용하겠다는 계획 모두 지속적으로 점검 해왔고, 소신 있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국립오페라단을 향한 다양한 칼 끝을 체감하고 있었다. “국립오페라단을 향한 쓴소리들이 있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다만 그 주장의 내용과 색깔이 다 제 각각이기 때문에 하나의 방향과 그릇에 담는 게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죠. 내가 믿는, 그리고 우리 국립오페라단이 믿는 신념을 믿고 나아가야죠.”
→[인터뷰②]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덕목을 논하는 자들에게 “노 페인, 노 게인” 에서 계속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