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45·가명)씨는 최근 서울 상계동의 20평대 아파트를 전세 3억1,000만원을 끼고 3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실제 투자금은 4,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 돈은 은행에서 빌린 돈이다. 박씨는 “부동산시장 상승기라는 말을 듣고 급히 빚을 내 투자했지만 집값이 꿈적하지 않는다”며 “괜한 짓을 한 것 같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 부동산시장이 크게 들썩이면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률이 낮은 지역의 주민이나 투자자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특히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투자자들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이자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부동산시장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은 새로 출범한 정부에도 부담스럽다. 실제 ‘참여정부’는 과거 집권 초기에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자 강남 자산가들을 겨냥해 정치적 고려가 다분한 10·29 부동산 대책 등을 내놓으며 사회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1.53% 올랐지만 양천(0.08%), 성북(0.36%), 강북(0.47%), 금천(0.47%), 노원(0.60%) 등 조사 대상 25개 구 중 30%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서울의 집값 상승률이 높은 것은 강동구(4.36%)와 송파구(2.79%) 등 과열 양상을 보이는 극히 일부 지역 때문인 것이다.
아파트 값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나 투자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최근 중계동의 30평대 아파트에 투자한 40대 직장인은 “부동산 상승 바람이 북쪽으로도 불 것으로 기대하고 올해 초 집을 샀지만 호가만 오를 뿐 실제 그 가격에 거래되는 일은 없다”며 “차라리 강남에 투자할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실거주하는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양천구에 사는 김모(61)씨는 “지인들 가운데 집을 산 지 몇 달 만에 수천만원이 올랐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서 “남들 집은 다 오르는데 내 집만 오르지 않는 느낌”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나마 집이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낫다. 전월세를 사는 서민들은 보증금이 오를까 전전긍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계약기간마저 어기면서 월세를 올려달라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마포구에 사는 한 50대 직장인은 “지난해 말 집주인과 반전세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전 연락이 와서 주변 집값이 올랐으니 월세를 5만원 더 내라고 했다”며 “전세나 반전세 물건이 워낙 귀하다 보니 결국 월세를 더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은 더욱 심각하다. 신촌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 한 지방 출신 대학생은 “다음달 월세도 마련하지 못한 입장이어서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며 “앞으로 당분간 집주인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성욱·이두형·신다은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