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가 가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몇 년 전부터 통신비가 정치 이슈화하고 있다. 우선 이 이슈 자체가 사실은 경제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이해로 만들어진 가공된 이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통신이 발달하고 주소 체계가 복잡해 내비게이션을 켜고 다니고 중고등학생이 입시 때문에 동영상 강좌를 많이 봐야 하는 수요의 특수성은 무시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다른 나라에 비해 통신비가 많으니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김치 수요가 너무 많으니 OECD 수준으로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억지스러운 것이다.
통신비 급증을 걱정하지만 현재 통신비는 과거의 통신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스마트폰이 TV·카메라·PC·MP3 등 수많은 전자기기를 대체하면서 이를 통해 원격 강의도 듣고 싼 e북도 읽으며 영화도 할인받고 값싸게 커피도 마시고 은행에 가지 않고 지리를 몰라 택시를 타고 갔을 타지에서 대중교통을 손쉽게 이용하고 값싼 숙박업소를 알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가계 통신비는 가전제품 구매비, 문화·교육·레저·교통비 등 가계의 모든 다른 지출에 영향을 미치며 소비자의 후생에 도움이 되니 소비가 느는 것인데 이를 단순히 통신비용으로만 보는 것은 소비자의 이성적 판단을 부정하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요구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최근 통신 3사의 영업 이익을 분석해보면 무선뿐 아니라 다른 콘텐츠 사업이나 유선 사업의 이익을 다 포함해도 단말기 1대당 영업이익은 3만~7만원 사이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1대당 연간 13만2,000원의 기본료를 폐지하면 모든 통신사는 막대한 적자 기업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통신 인프라에 투자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단말기보조금 축소와 데이터 요금 인상이라는 조삼모사의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단순 계산과 달리 어떤 재화는 단가를 낮춘다고 지출이 줄지 않는다. 사실 통신 단가는 계속 인하돼왔고 우리나라의 통신 단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싼 편이지만 수요가 더 많이 늘었기 때문에 지출도 늘고 있는 것이다. 통신비 지출이 쉽게 줄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통신은 계획 소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신은 자신과 무관하게 상대방이 많은 데이터 사용을 유발할 수 있고 전화와 동영상을 첨부한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신비 지출을 억제하려면 거꾸로 통신비를 무척 높게 책정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가계지출을 늘려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킬 것이다. 통신비가 모두 비용이라는 구시대적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동영상을 많이 보는 사용자들의 동영상 데이터를 사용량에서 제외하는 제로잉과 같이 소비 유형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 선택을 제공해 합리적 소비를 이끌고 있다. 이렇듯 기업들의 다양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것만이 해법이다. 선진 경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야말로 융합의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청산해야 할 시대착오적 개발 독재의 적폐일 뿐이다. 스마트 시대란 소비자가 늘 정부보다 스마트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