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8일 박스오피스 1위는 16만 7537명을 끌어 모은 ‘미이라’(감독 알렉스 커츠만)가 차지했다. 지난 6일 개봉해 쾌속 흥행으로 누적관객수는 125만 5797명이다. 이날 개봉한 ‘악녀’(감독 정병길)는 곧바로 2위를 치고 올라왔다. 7만 3306명을 동원했다. 3위는 ‘원더우먼’(감독 패티 젠킨스)이 3만 1667명을 더하며 뒤를 이었다. 이전에도 ‘걸크러쉬’ 캐릭터들은 많이 다뤄졌지만, 이 같은 주인공이 한데 주목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올해의 가장 강력한 여풍이다.
‘미이라’는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절대적 존재, 미이라 아마네트를 깨워 의문의 추락 사고를 당하고, 죽음에서 부활한 닉(톰 크루즈)이 전세계를 파괴하려는 그녀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다크 액션 블록버스터. 기존 ‘미이라’ 시리즈와는 차원이 다른 리부트 작품으로, 유니버설 픽쳐스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프로젝트 ‘다크 유니버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초대형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이라’에 등장하는 초강력 빌런 아마네트는 지금까지의 ‘미이라’ 시리즈에서 등장한 이모텝, 아낙수나문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자랑한다. 과거 ‘미이라’ 시리즈와 다르게 이번 편에서는 최초의 여성 메인 빌런을 내세웠다. 수천 년간 수은 속에 잠들었던 아마네트 공주는 악마와 결탁해 매혹적인 눈빛(?)과 관능적인 자태로 닉을 유혹하고, 주술로 죽음을 지배한다. 특징은 주술로 작은 거미까지 조종하고 미라 군단을 이끄는 것. 기존 ‘미이라’에서 보지 못한 좀비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보다 강력한 파괴가 벌어질 때는 모래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에 필적하는 ‘원더우먼’은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이자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히로인. 여성 빌런에 ‘미이라’ 아마네트가 있다면, 히로인에는 원더우먼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변형 속에 태어난 반신반인 원더우먼은 전쟁의 신 아레스를 처치하고 평화가 찾아오길 꿈꾼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으로 지옥 같이 변해버린 인간 세상에 직접 뛰어든다. 고향인 데미스키라를 나서 전장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순간부터 원더우먼은 인류 구원이라는 소명을 다 할 것을 각오한다.
원더우먼이 당당히 아레스 앞에 나서는 자신감에는 여섯 능력과 네 무기가 존재했다. 여섯 능력으로는 데메테르의 힘, 헤르메스의 속도, 아르테미스의 감각, 아테나의 지혜, 헤스티아의 집중력이 있다. 네 개의 무기로는 전설의 검 갓 킬러, 승리의 건틀렛(팔찌), 진실의 올가미, 어떠한 공격도 막아내는 방패가 있다. 고대 신들로부터 타고난 능력치에 강력한 무기들까지 완벽하게 갖춘 원더우먼은 이름 그대로 ‘놀라운’ 히어로임이 분명하다.
/사진=‘미이라’, ‘원더우먼’, ‘악녀’ 스틸
“실화냐?”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만한 ‘현실적인 강자’도 무시할 수 없다. ‘악녀’에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가 등장한다. 숙희는 장검, 단도, 권총, 기관총, 도끼 등 수많은 무기를 자유자재로 활용, 그 어떤 남성 액션보다 거칠고 독하고 살벌한 파워와 아우라를 보인다. 숙희는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 액션을 펼치는가 하면, 달리는 버스에 매달리는 고난도 액션도 마다 않는다. 마하 5의 속도로 비행하는 원더우먼만큼은 아니지만, 장기간 단련한 기민함과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격투하는 속도 속 집중력을 발휘한다.
숙희가 이토록 ‘괴물 같은’ 싸움을 벌이는 데는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아 킬러로 길러진 그는 조직에 버림받은 이후 국가 비밀 조직 요원이 돼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 10년 후엔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은 채 조직이 내리는 임무에 따라 움직이던 숙희는 오직 ‘살기 위해’ 죽이며 킬러 본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면서 숙희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한다. 악에 받쳐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한 숙희는 날 것 그대로의 한계 없는 액션을 펼친다.
이제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상은 옛말이다. 판타지든 현실 잔혹 느와르든, 각자의 세계관 속에서 태어난 아마네트, 원더우먼, 숙희는 저마다 목적의식이 분명하다. 지금의 여성 캐릭터들은 ‘죽일 이유’, ‘살릴 이유’를 모두 압도적으로 실행하는 중이다. 시점의 변화만으로 흥미로운 이 같은 여풍은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