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바이크]<40회>모터사이클로 여기만은 꼭, 헌화로와 승호대

■합본부록-길 한가운데서 연료탱크가 텅텅 비었다면!

올 봄 가와사키 W800을 타고 정말 열심히 쏘다녔습니다. 덕분에 한 3년치의 아름다운 풍경을 석달 동안 몰아서 본 느낌입니다. 오늘은 그 좋은 풍경을 두유바이크 애독자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주의-정작 사진은 발로 찍었음)

◇호쾌한 바다 풍경, 헌화로 드라이브 코스

첫 번째 라이딩 코스는 많이 가봤어도 또 가보고 싶어지는 ‘헌화로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네이버 지도에 ‘헌화로’만 치면 됩니다. 참 쉽죠?

금진해변을 기점으로 호쾌한 풍경이 펼쳐지는 헌화로 드라이빙 코스를 달린 후 심곡항에서 돌아나오면 됩니다


물론 수도권 거주자라면 먼저 동해까지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난점이 있긴 합니다. 저도 열심히, 열심히 달리느라 잠시 길가에 뻗기도 했습니다.

편하더군요(...)여러분도 체면 차리지 말고 누워보아요
하지만 달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지니까요.

사진으로는 미처 담지 못하는 헌화로의 풍경
W800이라 햄볶아요
이미 유명한 헌화로를 전 뒤늦게 알았습니다. 작년에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시그널’의 엔딩 장면에서 보고서야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그러고 보니 마음먹고 실제로 찾아가기까지 1년이 더 걸렸네요. 아마 W800이 아니었으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습니다.

자료화면=시그널 엔딩장면. ‘허준’ 이후로 제대로 챙겨본 한국드라마입니다. 너무 명작이라능...


제가 찾아갔을 땐 헌화로 곳곳이 도로공사 중이긴 했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갈 것 같습니다. 강릉에 꼭 가보고 싶은 식당도 있고, 헌화로를 기점으로 남해 방향으로 쭉쭉 해안도로를 달려보고도 싶거든요.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전망대-건봉령 승호대

그리고 헌화로보다 더 좋았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승호대입니다. 행정구역상 춘천이라 별로 멀지 않을 것 같지만 서울에서 은근 달려야 하는 곳이죠.

승호대로는 검색이 안 되는 내비들도 있습니다. 주소를 찍어넣으세요. 부귀리 산 59-9


승호대까지 가는 길은 편하지 않습니다. 춘천 청평사까지는 별다를 것 없는 길이지만 내비를 따라 청평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이 길이 맞나 싶어지죠. 그런데 청평사 주차장 뒷편으로 길이 있긴 있습니다. 왕복 2차선 포장도로지만 그 흔한 가로등도 없고 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는 길입니다. 봉화산을 둘러가는 코너길입니다. ‘부귀로’라고 불린다네요.

굽이굽이 이어지는 부귀로를 지나고 나면 부귀리 마을이 나타납니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죠.

‘경유’로 표시된 곳이 부귀리 마을회관, 도착점이 승호대입니다.
그리고 부귀리 마을을 조금만 지나면 승호대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을 만나게 됩니다. 역시 가로등도, 차도 사람도 없고 이젠 차선마저 없습니다.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면 서로 알아서 양보해줘야 합니다.

이날 전 혼자 라이딩을 떠난지라 문명의 흔적(…)이 포장도로, 가드레일, 갈매기표지밖에 없는 이 길이 조금 긴장됐습니다. 청평사 주차장 뒷편부터 승호대에 도착할 때까지 약 20여분 간 사륜차건 이륜차건 사람이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나마 위안이 돼준 갈매기표지. 이 길을 밤에 달리는 용자도 있나봅니다.
그렇게 달린 끝에 다다른 승호대는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소양호와 호수를 둘러싼 산의 능선은 봐도봐도 질릴 것 같지 않더군요.


물에 잠겨있어야 할 산 밑자락이 가뭄 때문에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참, 가는 길에 그렇게 인적이 없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30여분 앉아있다 보니 차나 바이크가 한두대씩은 올라오더군요. 차선도 없는 도로지만 어차피 전망 보러 오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도로변에 주차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승호대’라는 표지판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승호대 표지판. /사진=한국관광공사
아름다운 풍경을 회상하느라 제가 너무 진지해졌죠? 이대로 끝내면 너무 어색하니까 헌화로에 다녀오다 저지른 빙구짓을 풀어봅니다. 이번 빙구짓(…)은 바로, 달리다 기름이 떨어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이거 내 얘기임??


◇특별부록-바이크 타다 기름 떨어진 썰

때는 저녁 8시, 장소는 양평 즈음. 강원도에서부터 저를 태우고 열심히 달려온 W800은 서울 진입을 앞두고 주유등이 들어온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보같은 주인은 양평에서 “아직 괜찮다”며 주유소 두어 곳을 그냥 지나쳤죠. 그런데…그런데, 서울 진입 직전에 거쳐야 할 용마터널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유소는 약올리듯 반대쪽 도로에만 나타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느긋하게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용마터널. 저는 평소대로 묵묵히 앞차(사륜차)만 따라갔죠. 갓길주행따위 흥!! 주유등이 켜진 이후 족히 30㎞는 넘게 달린 것 같은데 이날따라 터널 안은 꽉꽉 밀렸고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20분 이상 걸렸습니다.

터널을 지나 마침내 서울. 이때만큼 주유소 표지판이 간절했던 적도 없었는데요. 속으로 ‘주유소 어딨…’까지 다섯 글자정도 외쳤을 때쯤 W800은 허망하게 시동이 꺼지고야 말았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와 교차로 한 개를 지나자마자 푸드드득, 꺼져버리더군요.

덕분에 연료가 고갈됐을 때 바이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막 시동이 꺼졌어도 달리던 힘이 남아있어 갓길까지 닿는 덴 성공했습니다…ㅠㅠ

그때의 기분.JPG


다행히 저는 혼자가 아니었고, 저보다 100배는 스마트한(일단 그때 기분은 그랬음) 동행인이 주유소를 찾아 떠났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STEP 1. 슈퍼에서 2ℓ짜리 생수를 사서 물을 따라버림

STEP 2. 페트병 속의 물기는 최대한 탈탈 털어버림

STEP 3. 주유소에서 휘발유 2ℓ를 구입해야 하는데 직영주유소에선 판매하지 않음

STEP 4. 인근 주유소를 헤맨 끝에 구입 성공

…이란 과정을 거쳤더군요.
기다리는 동안 길 한복판, 덩그러니(훌쩍)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ℓ 페트병에 담긴 휘발유를 어떻게 바이크 연료탱크에 무사히 주입해야 할까요? 저라면 대강 페트병을 기울이다 온통 흘렸겠죠. 하지만 저의 동행인은 달랐습니다. 저녁 9시의 중랑구 사가정역 사거리 부근에서 저는 마술같은 솜씨로 깔때기를 제작하는 맥가이버를 보았던 것입니다.

인근 주유소에서 공수해 온 휘발유
작은 페트병을 비스듬하게 잘라준 후 뒤집으면 깔때기 완성
미션 석세스
그렇게 저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두유바이크 독자여러분들은 이런 빙구짓 안하시겠죠?(찡긋) 혹시나 그런 상황에 처하시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