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마켓 인사이드] 산유국 매력 부각·정국 안정에..."다시보자 링깃화" 투자자 귀환

유가 회복세·나집 총리 리더십 위기 해소 힘입어
올 4.86% 치솟은 통화가치 "4% 더 오른다" 전망
"중동분열發 유가 급락·美금리인상은 악재될수도"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부패 의혹에 시달렸던 나집 라작 말레이 총리의 리더십이 정국이 안정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배럴당 30달러 대까지 곤두박질쳤던 국제 유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점도 산유국 말레이시아의 매력을 끌어 올리면서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는 아시아 주요 통화 대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달러 대비 링깃화 가치가 현재보다 4% 가량 추가로 오를 것이라고 자체 추정하고 있다. 링깃화 가치는 지난 5일을 기점으로 달러 대비 4.26링깃 선에 진입했으며, 말레이 중앙은행은 4.09링깃까지 추가 상승을 내다본 것이다.

전문가들의 예측도 다르지 않다. 말레이시아계 글로벌 증권사인 CIMB증권의 리콕콴 이사는 링깃화 가치가 2·4분기 안으로 달러 대비 4.1링깃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예측한 링깃화의 적정 가치는 3.8~4.0링깃이다.

이처럼 링깃화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는 글로벌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링깃화 표시 회사채 판매 규모는 전년 대비 45%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링깃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30일 달러당 4.49링깃에서 지난 8일 4.27링깃으로 4.86% 오른 상태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필리핀 페소화가치가 같은 기간 1.30%, 0.17% 오른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상승세다.


링깃화가 지난해까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가치 급등은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나집 총리를 중심으로 고위급 공무원들이 국영투자펀드인 1MDB의 자금을 유용해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1MDB 스캔들’이 대규모 시위 등 정국 불안을 초래하면서 투자자들은 말레이 자산에서 발을 뺐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시작으로 달러 강세가 시작되면서 말레이 중앙은행이 환율관리를 위해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링깃화 거래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자 글로벌 펀드들은 링깃화 표시 채권 보유 규모를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였다. 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를 등지면서 링깃화의 가치는 지난해 4.47%나 떨어졌다.

하지만 유가 회복에 힘입어 말레이의 경제가 눈에 띄게 회복된 데다 나집 총리의 리더십 위기가 상당 부분 해소되자 투자자들이 다시 말레이시아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30일 OPEC의 감산 합의 이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까지 회복되면서 말레이시아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는 원유 관련 물품의 수출은 크게 늘었다. 지난 4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5.7%, 50.1%나 상승했다. 유가 상승 호재로 지난 3월과 4월 말레이시아의 전체 수출 규모도 각각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1%, 20.6%씩 늘었으며, 지난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6%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초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정국 불안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암살된 사건에 대해 말레이 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히 대처하면서 1MDB에 집중했던 정국을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정국이 안정되면서 말레이 중앙은행은 지난 4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25%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전면 해제하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규제 해제로 말레이시아 투자자들이 링깃화 표시 채권 등 자산을 팔게 되면 유동성이 높아져 외국인 투자자들의 접근성도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말레이시아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31일을 기준으로 4년 만에 100bp(1bp=0.01%포인트) 밑으로 떨어져 앞으로 투자액이 안정적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최근 카타르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국가들의 외교 단절로 OPEC의 공조가 흔들리면서 유가가 다시 급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돌고 있다는 점은 잠재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링깃화의 위험요소는 중동의 불안”이라며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린다면 말레이시아에 위험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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