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폭탄도 미래가치는 못 바꿔
보수정권 규제완화땐 되레 주춤
최근 한 자산가를 만났다. 참여정부 당시 ‘집값과의 전쟁’의 실패를 예견했던 그였다. 참여정부는 왜 실패했을까. “강남 집 사는 것을 투기로 봤기 때문이지.”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들도 취·등록세 정상적으로 내고 집을 산 사람들이야. 다른 곳에서 집 사면 실수요이고 강남 집 사면 투기라고 보는 접근법 자체가 잘못된 거지.”
종부세 카드는 왜 안 먹혔을까. “자산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하나야. 미래 가치지. 물론 세금 늘면 기분이 좋지는 않지. 하지만 그뿐이야. 그것 때문에 미래 가치가 바뀌는 건 아니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간 이어져 온 규제 완화 정책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는 진단에 대해서도 그는 반론을 제기했다. “규제 때문이라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기간 집값이 훨씬 더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잖아.” 실제로 2007년 12월 이후 지난 5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27.8%로 참여정부 기간 5년보다 낮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2007년 말과 비교하면 아파트 매매가는 3.4%밖에 오르지 않았다.
집값상승? 저금리·부동자금 탓
해결책은 시장이 알아서 조절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와 넘치는 부동자금을 집값 상승의 진짜 이유로 꼽았다. “돈은 넘쳐 나는데 투자할 곳은 없어. 그러니 너도나도 부동산에 몰리는 거지.”
해법은 없는 걸까. 너무 간단한 답이 되돌아왔다. “그냥 놔두면 돼. 집값이 과하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집 사라고 등 떠밀어도 사람들은 집 안 사. 시장이 알아서 조절하는 거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분이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다. 치솟는 강남 집값에 대한 ‘강남 밖’의 시선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남 집값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는 그에게 반박할 논리 역시 마땅치 않았다.
집값을 둘러싼 정부와 시장의 전운이 다시 감돌고 있다. 이번에도 진원지는 강남이다. 이미 정부 안팎에서는 대출 규제 강화, 주택투기지역 지정 등 다양한 카드가 거론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집값을 잡기 위해 강력한 투기 억제책이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가 능사일까. 자칫 정부의 조급증은 시장을 망가뜨린다. 정권마다 뛰는 집값을 잡으려고, 혹은 위축된 거래를 살리려고 땜질 처방식 대책을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시장의 왜곡만 키웠다. 정권이 뒤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정책을 신뢰할 국민은 없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시계가 결코 2003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