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한국인像] <41> 명성황후 민아영

명성황후 민아영(1851~1895년)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이다. 외세를 끌어들이고 외척정치로 조선을 망하게 했거나 또는 줄다리기 외교로 독립을 유지하고 흔들리는 국정의 중심을 잡았다. 나이 16살에 왕비가 됐지만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외척정치의 굴레에 휘말린다. 정치는 국왕(고종)보다는 국왕의 아버지(대원군)와 왕비의 대립으로 전개된다. 결국 그녀는 시해당하고 조선의 운명도 결정됐다. 민중의 깨우침과 조직적 활동만이 국가를 살릴 수 있었지만 왕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본명과 관련해 조선왕조 왕비 족보인 열성왕비세보에는 ‘민아영’으로 기록됐다. 반면 ‘민자영’이라는 말도 있다. 사진은 고향인 경기 여주에 있는 동상이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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