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최근 2년간 감소세를 보이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무려 15.5%나 급감해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증가세를 보이던 문화·체육·관광 분야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으로 5.0%나 줄었다. 4차 산업혁명을 한다면서도 연구개발(R&D) 분야는 1.3% 증액 요구되는 데 그쳤다.
기획재정부가 12일 공개한 각 부처의 예산 요구안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른바 ‘슈퍼 예산안’이다. 올해 처음 400조원을 돌파한 나라 살림 규모가 내년에는 최소 42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3.0%였던 지난해의 배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안 증가율(6.0%)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에서 밝힌 예산안 증가율인 7.0%를 밑돌고 있다.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의 주된 업무는 각 부처의 요구안을 심의해 ‘칼질(삭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처 요구안을 훌쩍 뛰어넘는 확장적 예산안이 편성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짜는 첫 예산인 만큼 아무래도 국정과제 중심으로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 같은 설명에 힘을 보탠다. 예산안은 정부가 정책 목표를 실행하는 기본 베이스다. 정부의 색깔이 그대로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등 국정과제를 수행하는데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내년 예산안도 예상보다 훨씬 확장적으로 편성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복지·고용·보건 분야가 8.9%에 달하는 증가율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각 부처에 내려보낸 예산안편성 추가 지침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사업을 최우선 반영하라고 통보했다. 여기다 기초생활보장급여, 4대 공적연금, 기초연금 등 법에 보장돼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인 의무지출이 불어나고 있는데다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 지원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국방 예산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킬 체인(Kill Chain) 추가 설치 및 군 장병 급여 인상 방침에 따라 8.4% 증액 요구됐다. 교육 분야도 내국 세수 증가에 따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늘면서 7.0% 증가했다.
반면 보수정권 때 급증했던 SOC 예산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내년 SOC 예산 총액은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20조원대가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SOC 분야의 부처 요구안은 18조7,000억원으로 올해 예산(22조1,000억원)보다 3조4,000억원 줄었다. 감소율은 15.5%로 12개 분야 중 가장 컸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1일까지 각 부처와 협의를 거치고 국회에서도 조정되겠지만 SOC 예산을 줄이는 국정 기조가 워낙 강해 20조원선은 밑돌 것으로 보인다. SOC 예산은 2009년 4대강 사업 등에 투입되며 20조원을 돌파했으며 2010년에는 25조1,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일각에서는 SOC 예산을 무조건 줄이는 게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년 이상 노후화된 교량·댐 등이 많은데 SOC 예산 축소 기조에 이들 보수작업이 미뤄져 결국 안전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사용연수 30년이 넘는 교량·댐 등 1·2종 시설물은 2,862개로 전체의 4%에 달했다. 2030년에는 2만6,209개로 36.9%까지 불어난다.
예산 지출 급증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세수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예산 총량이 늘어나면 결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라가면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종=김정곤·이태규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