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언덕길

권달웅 作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린다.

온 힘을 다하여

소똥을 뭉쳐 안간힘을 쓰다가

언덕 아래로 놓쳐버린다.

쇠똥구리는 희망처럼 아득한 길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반겨주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살아갈 집 한 채 짓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식식대는 황소가 거품을 물고

싸놓고 지나간 똥이


징검다리에 놓인 까만 돌처럼 드문드문한

망초꽃 하얗게 핀 시오리길,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오래된 셰프죠. 똥내 배지 않도록 앞치마를 단단히도 여몄죠. 쇠똥구리가 굴리는 것은 소똥이 아니라 신성한 생계죠. 둥글게 굴려 가서 알도 낳고 새끼도 키울 작정이죠. ‘오늘도 일용할 쇠똥을 가져오셨군요.’ 아내 쇠똥구리가 현관에서 공손히 맞이하죠. 때로 경단을 놓치고 망연하지만 포기하지 않죠. 일곱 번 놓쳐도 여덟 번 굴려 오죠(시의 마지막이 쉼표인 것도 그 때문이겠죠). 늘 쇠똥에 코 박고 사는 줄 알지만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은하수를 보고 제 집을 찾아간다죠. 우리는 쇠똥을 굴린다고 하지만, 저는 지구를 굴린다고 믿고 있다죠. 쇠똥구리가 다 사라지고 나면 그제야 호모 사피엔스들이 깨닫겠죠, 지구가 멈추었음을.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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