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 근로시간 축소·소득증대 두토끼 잡겠다지만…또 기업부담만 가중

최저임금 상향 등 문제 산적한데
포괄임금 규제는 엎친데 덮친 꼴
재계 "일률적 금지는 옳지 않아"
노동계 "노동착취제…결정 당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포괄임금제를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는 변태임금제’라고 규정했다. 정치인의 수사라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많은 근로자가 포괄임금제의 폐해를 호소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 또한 불법·편법적으로 포괄임금제를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근로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일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업무 성격상 출퇴근시간을 정하기 어려운 경우 등은 초과근로시간을 일일이 측정하기 어려우니 매달 일정한 금액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미리 정한 뒤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포괄임금제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근로시간 산정이 용이한 직종에서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은 절반 가까운 40.6%가 포괄임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비제조업(64.1%)뿐 아니라 제조업(33.4%)에서도 적지 않게 활용되고 있다. 규모별로도 중소기업(40.1%), 대기업(54.7%)을 가리지 않고 만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 후반부터 “회사가 편법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쓰고 있다”는 취지의 소송도 급증했다. 법원은 최근 간호사, 요양보호사, 학원 강사, 광산 근로자들이 각각 낸 소송에서 모두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므로 포괄임금 방식의 임금 지급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포괄임금제를 ‘임금 후려치기’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 달 평균 초과근로 시간이 40시간이 넘는데도 10시간치 수당만 지급하는 식이다. 포괄임금제는 보통 기본급에 초과근로수당이 포함돼 지급되기 때문에 근로자가 몇 시간치 수당을 받고 있는지조차 알기 힘든 게 일반적이다. 이런 점 때문에 포괄임금제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근로의 주범 중 하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이번에야말로 편법적인 포괄임금제를 뿌리 뽑겠다고 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은 포괄임금제를 규제할 법적 규정이 없어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근로자는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앞으로는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 직종은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지침을 만들고 포괄임금제를 악용한 임금 후려치기도 강력히 단속할 계획이다. 합법적인 노사 합의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경우 역시 단속 대상이다.

국정기획위원자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편법적인 포괄임금제가 근절되면 무분별하게 야근을 시키는 관행이 줄어들고 초과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가능해 임금 소득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포괄임금제 규제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정근로시간 단축’과 같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법 개정까지 갈 필요없이 ‘비정상의 정상화’만으로 장시간 근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판단이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노동계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는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재계는 우려를 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정책 가운데 주당 법정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사용에 부담금 부과, 최저임금 1만원 상향 등 경영에 부담을 주는 것이 이미 한두 가지가 아닌데 포괄임금제까지 규제하면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는 만큼 포괄임금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려면 근로시간이 불규칙한 사업장을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확대, 경직적인 임금 체계의 개선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과 중심의 보수체계 개편이라는 관점에서 근로시간과 임금 체계 간의 관계를 재정비하고 고용형태의 다양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노동법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세종=임지훈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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