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열’ 血 끓는 1920년대...이준익 최고의 도발적 작품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



시원하게 내지르고 시작하는 영화 ‘박열’이다. 이준익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는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이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선 공개 됐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의 믿기 힘든 실화를 다뤘다.

지금껏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대표 독립투사 혹은 억울함에 호소하는 이들의 사연을 조명했다. 이번에 이준익 감독은 초점을 달리해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인물 박열의 활동을 파헤쳤다. 전작 ‘동주’(2016)로 독립운동가 겸 수필가 송몽규를 새롭게 알린 것에서 확장된 안목이다.

그러면서 ‘동주’와는 완벽히 대조되는 톤을 띈다. ‘동주’는 같은 일제 강점기 중 1945년, 미완의 청춘으로 남은 두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줄곧 감상적이고 담담하게 다뤘다. ‘박열’은 1923년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저항정신을 파격적이고 뜨겁게 그렸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와 맞물린 아나키즘, 부당한 권력에 맞선 용기,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표출하며 여전히 막막한 현 시대를 관통한다. 이준익 감독은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인 인물을 내세우면서 고정관념을 탈피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확실히 새롭다.


사건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 대학살’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끔찍한 만행에 박열은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조선 최초의 대역죄인이 돼 사형까지 무릅쓴 공판을 진행한다. 억울함에 발 벗고 나선 박열은 일본 대법정에서 큰소리치는 패기의 조선인을 자처한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밟히던 ‘개새끼’에서 무는 ‘미친개’가 된 박열은 무논리의 일제 주장에 당당히 맞서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후미코 역시 ‘오늘만 살아도 된다’는 신념으로 박열과 함께 투쟁한다. 타향에서 독립을 성토한 박열도, 같은 민족과 척을 지면서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후미코도 굉장한 의인임에 틀림없다.

박열은 1919년 3.1운동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 일제의 폭압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청년이다. 이 인물을 맡은 이제훈은 남루한 차림부터 상당수의 일본어 대사, 호기로운 눈빛, 폭발적인 발성까지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스스로 “연기 인생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 자부할 만하다.

어느덧 이준익 감독의 뮤즈가 된 최희서는 ‘동주’에서의 쿠미 역 이후, 이번 후미코 역으로 또 한 번 손색없는 일본인 연기를 펼쳤다. 완벽한 일본어는 물론 어눌한 한국어 발음, 당당하면서도 익살스런 면모를 두루 소화해 매력을 극대화했다. 이제훈과 최희서가 서로 상대방이 아닌 박열과 후미코는 상상할 수 없다고 극찬한 만큼 캐릭터들이 독보적이다.

192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조선 배경 시대극 ‘황산벌’(2003) ‘왕의남자’(2005)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0) ‘사도’(2014)와는 또 다른 이국적인 느낌의 고증에 힘썼다. 화려한 요소를 배제하면서 오히려 적은 제작비로 신문, 사진, 서적 등 디테일에 집중해 시대의 정서를 재현했다. 당대의 곡 ‘인터내셔널가’와 ‘이태리정원’ OST는 금세 시대에 빨려 들어가게끔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에 가려진 인물은 박열 말고도 여럿 있겠다. ‘박열’을 통해 역사 속 뜨거운 울림을 재조명 해보며, 현 시대에서 가져야 할 진정한 의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으리라 본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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