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장에 언제나 따라붙는 반론은 ‘식량 안보’다. 우리 국민이 먹는 것이 우리 땅에서 어느 정도 나야 위기가 닥쳤을 때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농업을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민 중 고령자가 많은데 농업 분야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하면 이들의 수입이 줄고 결국 사회적 비용이 더 클 것이라는 반박도 많았다.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지금까지의 농업 예산은 이를 빌미로 문제점이 많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쌀 위주 편성…식량 자급률 뚝뚝
“미래 먹을거리로 농가 유도 등
물고기 잡는 법부터 가르쳐줘야”
농업 부문 예산을 보면 지난 5년간 72조2,000억원이 들어갔다. 올해 전체 예산의 3.7%를 차지하며 비중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15조원 내외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농업정책의 대원칙은 ‘농가소득 향상 및 안정적인 식량 공급’인데 관련 통계는 악화하고 있다.
우선 도시가구 실질소득은 2003년 4,345만원에서 2014년 5,210만원으로 매년 1.7%씩 증가했다. 하지만 농가가구는 3,321만원에서 3,206만원으로 오히려 매년 1.4%씩 쪼그라들었다. 식량 자급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사료용 작물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은 1990년대 30%대였지만 2014년 24.0%로 하락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국민들이 쌀을 먹지 않는데 농업 예산은 쌀 위주로 편성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농림축산식품부 271개 세부사업 중 쌀 관련이 50개로 전체의 18.5%를 차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14조5,000억원 중 5조 4,000억원으로 37.8%에 달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해 한 포럼에서 “국제 경쟁 시장에 완전히 노출돼 있는 한국 농업이 지금과 같이 쌀에만 모든 예산과 정책을 집중해서는 살길을 모색하기 어렵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가 고령화로 농민들이 기존에 짓던 쌀농사를 계속 짓고 싶어 하고 국회에서는 이들을 위한 쌀 예산을 줄이지 못하고 있어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들은 쌀뿐만 아니라 콩·보리·조·수수 등 곡류도 많이 섭취하고 있는데 나랏돈은 쌀에 조준하고 있다 보니 식량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 방식도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강 연구원은 “농산물 문호가 개방되며 값싼 외국산 농산품이 밀려 들어오고 농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단순히 소모성 자재, 각종 집기류 지원에 치중하는 등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지면서 농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래 먹을거리 쪽으로 농가를 유도하기보다는 문호 개방으로 생긴 손해를 단순히 보상하는 근시안적 정책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닌 물고기를 매번 잡아주기만 했다는 이야기다.
농산물 가격은 시장 개방으로 계속 내려가는데 이를 따라잡으려 생산성 향상에 예산이 투입된 것도 문제다. 전 세계에서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어 우리는 가격으로 승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원가를 낮추는 데 예산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 기준 농업 예산의 38.6%가 생산기반 확충, 생산성 향상을 위한 보조 지원 사업에 집행됐다. 민간 농업 분야 싱크탱크인 GS&J의 이정환 이사장은 “우리 농산물이 가격으로 외국산과 경쟁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며 “국산에 대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붙이는 등 브랜딩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AI·구제역 방지에 초점 맞춰야
축산업 지원의 경우 정부가 ‘사업화·효율화’에 지원하는 방향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준기 농촌경제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그동안 정부 지원이 시설 효율화, 수익성에 치우쳐 있었다”며 “이는 돈을 버는 민간이 해야 할 일이다. 구제역을 방지하는 등 안전문제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쉽게 말해 소·돼지·닭 등을 다닥다닥 키워 수익을 극대화하는 시설에 정부 지원이 집중됐는데 이보다는 매년 막대한 혈세 낭비를 낳는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를 사전에 방지하는 쪽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