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일일드라마 ‘사랑은 방울방울’의 종영소감을 말하는 배우 공현주의 입에서 들을 수 없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시원섭섭’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자그마치 7개월에 가까운 시간동안 녹화에 임했던 만큼 아쉬우면서도 내심 홀가분함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공현주는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은 방울방울’은 지금의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작품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진=지수진기자
한 여자가 연인의 심장을 이식 받은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던 ‘사랑은 방울방울’에서 공현주는 의사인 아빠 덕분에 풍족한 삶을 살아서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 성미가 풀리는 한채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극중 한채린은 여주인공인 은방울(왕지혜 분)과 모든 것이 반대인 악녀였다. 한채린은 과거 은방울의 아버지 은장호(김명수 분)의 뺑소니를 낸 이후,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박우혁(강은탁 분)과 은방울 사이 사랑이 싹트자, 중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면서 또 다른 죄를 저질러온 인물이기도 했다.
화려한 화장과 얄미운 악녀연기로 안방극장을 울고 웃고 또 화나게 만들었던 공현주. 한채린의 옷을 벗고, 오랜만에 ‘공현주’ 본인으로 돌아온 그녀는 지나간 촬영을 떠올리며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둘 씩 풀어 나갔다.
→“촬영이 길었던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할 법한데 종영소감으로 ‘시원’이 없다니 놀랍다.”
“체력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제가 일방적으로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이 모두가 정말 좋으신 분들이셨다. 감정적인 소모는 많았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소통을 하면서 오히려 제 안에 상처 받았던 것들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역할은 쉽지 않았지만 ‘사랑은 방울방울’은 배우 공현주로서는 많이 의지가 되고 도움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엄밀히 말해 7개월간 쉬지 않고 달린 셈인데, 힘들지 않았다니 거짓말 같다.”
“저도 그게 신기하더라. 7개월이면 거의 반년인 거 아니냐. 촬영을 하기 전 그렇게 스케줄을 소화하면 끝날 때쯤 녹초가 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신기하게 촬영을 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거다. 누군가 ‘한 번 더 출연 할래?’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하지’라고 말할 정도로, 제가 기대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저에게 준 작품이 ‘사랑은 방울방울’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소통 속 즐기면서 일을 한다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좋은 기운을 얻으면서 촬영을 하니 체력적인 소모가 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안 맞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없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말 없었다. 서로 만나고 얼굴 보면 웃기 바빴고, 정말 ‘척하면 척’이 저절로 될 정도로 소통이 잘 됐다. 하하. 제가 눈치를 정말 많이 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스타일이다보니 촬영장에서 ‘다시 하고 갈게요’라는 말을 정말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욕심 부려서 하고 싶은 부분에서 양해를 구할 정도로 괜찮았다. 이런 현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그래서 끝이 더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지수진기자
→“극중 연적이었던 왕지혜와는 어땠는가. 연기에 열중하다보면 가끔 얄미울 수 있었을 것 같다.” “지혜랑 진짜 친하다. 함께 작품을 하기 전부터 친했다. 저희도 사람이지 않느냐. 일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서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그때마다 지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었다. 모니터도 많이 해줬고, 응원하면서 촬영을 이어갔다. 함께 촬영하는 내내 지혜에게 정말 고마웠다. (웃음)”
→“솔직히 공현주씨가 연기했던 한채린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었다.”
“물론 저와 채린이는 정말 반대다. 저는 떠난 사람 잡지 않는 주의인데, 채린이는 그러지를 못하더라. 매몰차게 거절당하면서 끝까지 매달리는 채린의 모습이 솔직히 쉽게 공감은 안 됐는데, ‘관계에 대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춰봤다. 저는 관계에 있어서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관계라는 것이 만났다가도 헤어지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누구나 ‘내가 다시 새로운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혹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혹시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등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연애도 그렇고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두려움을 채린의 내면 깊숙이 숨겨놓고, 이를 집착으로 보일 수 있도록 접근해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극중 한채린은 너무 뻔뻔하고 독했었다.”
“과거 KBS1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 못다 보여드렸던 역할에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보다 더욱 더 역할의 색채를 보여주기 위해 더 독하게 연기해 나갔었다. 그래서 더 독해보이지 않았나 싶다.(웃음)”
“청승맞을 수도 있고, 다들 욕할 수도 있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저는 채린이라는 인물이 슬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안쓰럽더라. 채린에 이입해서 보면 미래도 불투명하고,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리고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공감을 하지 않고, 대본에 대해 마냥 부정을 하면 한없이 재미가 없더라. 하하.”
→“내지르는 감정연기가 많았다. 이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에 대한 걱정은 있었는데 촬영을 하면 할 수 록 후련하더라. 오히려 감정을 표출하거나 눈물을 쏟아내는 신을 기다릴 정도랄까.(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중에는 감정을 더 많이 극적인 상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다.”
→“어찌됐든 마지막에 가서 채린이 감옥에 갔다”
“제가 작가님께 ‘저 꼭 감옥 보내주셔야 해요. 마지막에 하루만 보내시지 말고 빨리 보내주세요’이랬다. 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보통 악녀들은 마지막회에 감옥에 가는 것에서 끝날 때가 많다. 감옥신을 찍으면서 레드립도 지우고 내추럴하게 촬영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마지막에 초연해지면서 반성하는 모습, 제가 제일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연기였다. 채린의 진실 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나름 만족스럽다. (웃음)”
사진=지수진기자
공현주는 ‘사랑은 방울방울’을 가리켜 자신의 연기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민이 많았던 시기, 이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었다.사실 공현주는 2015년 JTBC ‘순정에 반하다’부터 ‘사랑은 방울방울’까지 약 1년이라는 연기 공백기가 있었다. 그 공백기 동안 공현주는 다양한 구설에 시달려야 했다. 이 가운데 공개 열애를 했던 공현주는 결별을 알리기도 했다. 공백기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던 공현주이기에, 그에게 있어 연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했다.
→“지난 1년 간 굴곡이 많았다.”
“제가 어떻게 보면 데뷔 후 큰 기복이 없었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이런저런 이유들로 진짜 극중 채린이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심정을 실제로 느끼고 경험했었던 순간이었다. ‘사랑은 방울방울’이 귀했던 것은, 제가 힘들었던 순간 손을 잡아준 작품이었던 것이다. 힘들었던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제가 앞으로 연기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 지 알려준 작품이었다.”
→“‘사랑은 방울방울’이 일종의 ‘터닝포인트’였겠다.”
“맞다. 깊이 있는 극적인 감정들을 역할에 맞게 경험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저는 연기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다. 공백기 동안 힘들기는 했지만, 힘들었던 시간과 감정을 경험했던 시간이었고, 이는 배우로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까. ‘사랑은 방울방울’ 속 한채린이라는 인물은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역할 중 가장 차분하고 편안하게 연기했던 것 같다. 연기를 통해서 후련함을 느꼈고,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민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심히 애 써주시고 서포트 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위로도 얻고 자극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 시간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의기소침해 졌었고, 또 힘들었다.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이후 연기적인 이슈를 만드는 것을 원했는데, 논란으로 이슈를 만들다보니 검색어에 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제 자신에 대한 실망과 속상함,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의 시간도 있었다. 지금 본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웃음)”
→“많이 의연해졌다.”
“솔직히 대중들에게 ‘저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해주세요’라고 부탁할 수 없는 거 아니냐. 그건 진짜 허황된 욕심인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은 제 스스로를 돌아봤던 순간들이었다. 예전에는 남에게 의지하며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어, 힘든 것을 속으로 삭혀왔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사랑을 방을방울’을 통해 울거나 분노를 표출 했을 때 제 생각보다 더 긍정적 반응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그때 혼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나누면서 함께 고민하면 ‘분명히 긍정적인 시너지가 있을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쁨은 나누면 배이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지수진기자
→“논란을 거친 후 많이 강해진 것 같다.”“사실 제 문제를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었다. 어떻게 보면 우울해 질 수 있고 예민해 질 수 있었는데, ‘사랑은 방울방울’이 잘 극복할 수 있는 시기를 선물해 준 것 같다. (웃음)”
→“드라마가 끝이 났다.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가?”
“제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캠페인의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캠페인은 월경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및 다양한 어려움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프리카 여아들을 위해 면 생리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배우로서 자리매김하는 것도 저의 목표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운 좋게 월드비전 홍보대사도 하게 됐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게 들어선 것 같다. 비록 빠르지는 않을지언정, 차근차근 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하하.”
→“결혼생각은 없는 것인가?”
“작품을 통해 연기의 재미를 알았고, 현장의 즐거움도 배웠다.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돌잔치를 하면서, 역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초조함고 우울한 감정이 있었다. 만약 이 작품을 안 했으면 공허함이 컸을 텐데, 감정적으로 가라앉았을 때 일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 연기에 집중하게 됐고 덕분에 잡념을 떨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승마를 배워보고 싶다. 말 타는 법을 배워두면, 사극이나 다른 어떤 역할을 했을 때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시간 있을 때 준비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하고 싶다. 그동안 단면적인 부분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정말이지 다양한 캐릭터와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웃음)“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