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 소도둑 매장
최근 소비 심리가 다소 개선되면서 그동안 외식업계를 주름 잡았던 가성비 트렌드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까지는 극심한 경기불황과 국정 마비로 인해 무조건 가격부터 내리고 보는 가성비 경쟁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가격을 그대로 두고 품질을 놓이는 가성비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른바 ‘B+ 프리미엄’ 트렌드다. B+ 프리미엄은 지난해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가 올해의 주요 소비 트렌드로 제시한 개념으로 평범한 B급 제품에 특별한 가치(프리미엄)를 부여한 소비재를 말한다. 값비싼 A급이나 S급 제품은 아니지만 그저 그런 B급보다는 만족도를 높인 제품이 가성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셈이다. 외식업계에서는 이 B+ 프리미엄 트렌드가 점포의 수익성과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모두 높이는 새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도둑’은 이런 B+프리미엄 프랜차이즈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소도둑은 한우 등심 1등급 이상의 생고기를 무한리필하는 국내 첫 소고기 전문점이다. 서울 청담동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도둑은 매장 규모가 148㎡(약 45평)에 불과하지만 하루 평균 매출은 최대 610만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보통 고깃집이 하루 100만원의 매상을 올리기도 힘든 현실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소도둑의 인기 비결은 한우 등심 1등급 이상의 신선한 냉장육 소고기를 야채와 함께 무한으로 제공하면서 가격은 한 사람당 1만9,800원 밖에 받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등심 1등급뿐 아니라 한우 1++등급과 동일한 등급에 해당하는 미국산 프라임급 블랙앵거스 토시살까지 마음대로 즐길 수 있게 한 점도 강점이다. 매장 셀프바에는 농장 직거래로 구매한 신선한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했다. 소고기를 굽는 데는 참숯을 사용한다.
이같이 적은 부담으로도 고품질의 메뉴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소도둑만의 독특한 점포운영 시스템이 있다. 일반적인 무한리필 고깃집의 경우 보통 업주가 미리 준비한 고기를 고객이 직접 가져가는 콘셉트를 따른다. 그러나 소도둑은 고객이 고기를 주문하면 이를 바로 썰어주는 ‘고기바’ 시스템을 적용했다. 고기바에서는 생고기를 포장 판매하기도 하고 생고기와 야채를 활용해 ‘혼밥세트’, ‘커플세트’, ‘패밀리세트’ 등 테이크아웃 상품까지 판매하며 부가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디자인에 신경 쓴 매장 인테리어도 소도둑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서울 교대역 인근에 있는 캐주얼 다이닝 일식 전문점 ‘미타니야’도 대표적인 B+프리미엄 점포로 꼽힌다. 2007년 오픈한 300m²규모의 이 점포는 지금도 평일 하루 평균 300~400명, 주말과 휴일 평균 500~600명의 손님이 찾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가족 외식 명소로 자리 잡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에는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다.
서울 교대역 인근 미타니야 매장
미타니야의 인기 비결은 특급 호텔 수준의 최고급 일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점이다. 미타니야의 모든 사시미 재료와 기타 식자재는 국내 최고급을 매일 아침 배송받아 당일 모두 소진한다. 국내에서 찾기 힘든 식자재는 일본에서 구하기도 한다. 대신 소비자 가격은 특급호텔의 절반도 안 되게 책정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20만~30만원 수준의 식사가 10만원 수준에 제공되니 손님이 끊일 수가 없다.
서울교대 근처에 있는 이주사 목로청 매장
서울교대 근처에 있는 이자카야 전문점 ‘이주사 목로청’도 품질 좋은 메뉴와 거품 뺀 가격으로 유명한 외식업체다. 보통의 이자카야는 음식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 젊은층이 자주 찾기가 어려운 업종인데 이주사 목로청은 이 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젊은층을 타깃으로 품질은 고급 이자카야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최저가 메뉴를 5,900원으로 책정했고, 주 메뉴 가격도 일반 호프집과 비슷한 1만5,000~2만원 수준에 내놓았다. 66㎡(약 30평) 규모 매장에 하루 평균 매출이 200만원을 넘을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는 후문이다. 피크 타임에는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인테리어도 일본 번화가 거리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듯한, 스트리트 카페형으로 꾸며 여성 고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B+ 프리미엄 점포들이 외식업계에서도 성업할 것으로 전망했다. 단순히 ‘싼맛’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자존심은 지키면서 부담 없는 가격에 제품을 내놓는 가게에 소비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기존에 유명 브랜드를 좇던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가 럭셔리 제품에서 가격 거품을 뺀 B+프리미엄 브랜드 선호로 돌아설 것”이라며 “이에 따라 창업자도 고객이 자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서비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