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16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이호재기자
대담=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취임 1주년을 맞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년간의 최대 성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약속을 지켜낸 일이다. 지난해 6월 취임 당시 정 의장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앞장서 국회 내 환경미화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의장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회사무처를 중심으로 틈이 날 때마다 국회 노동조합은 물론 한국노총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담당자들을 만났다. 그렇게 수차례에 걸쳐 ‘밀당(밀고 당기기)’을 거듭하면서 서로의 이견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 의장은 충분한 물밑 협상의 시간을 보냈다. 미처 상호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눈앞의 성과에 욕심내다가 갈등과 불만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협상 자체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충분한 물밑 협상의 시간과 세밀한 협상 전략 덕분에 노동자와 사용자 측이 모두 만족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정 의장은 당시의 경험을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각종 노동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똑같이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의장은 “우리의 아들·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숙제”라면서도 “다만 궁극적으로는 고용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되 정책 결정과 집행 이전 단계에서 충분한 물밑 대화를 통해 노동자와 사용자 측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면서 마찰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의장이 노사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직언을 아끼지 않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첫 출범한 노사정위원회의 초대 상임위원을 지낸 경험 때문이다. 당시 경험을 통해 정 의장은 노사정 대타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정 의장은 이를 위해 사용자인 경영계뿐 아니라 노조의 양보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창출을 위한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은 무엇보다 기업의 생존이 전제돼야 가능한 만큼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노사정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끈질긴 고민과 노력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오시마 다다모리 중의원 의장의 초청으로 지난 7~9일 일본을 공식방문하고 돌아온 정 의장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그는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게 안 되면 다른 것도 모두 안 된다는 식의 ‘박근혜 정부식’ 접근 방법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는 할 말은 하면서 대응하되 다른 경제 현안은 별도의 유기적 협력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거사·독도 문제와 경제 현안을 분리해 대응하는 일종의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정 의장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는 당장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은 사안들”이라며 “경제를 포함해 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은 상황에서 특정 문제에만 매달려 국익을 해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한 후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이 크게 줄면서 양국의 관광 역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독도 문제를 내부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과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여야를 향해서도 정 의장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과거 진보정권 10년과 보수정권 10년을 거쳐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섰듯이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는 법”이라며 “여당 시절 야당에 당한 대로 고스란히 야당이 돼서 되갚아주는 분풀이식 정치로는 결코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정당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여당과 야당의 갈등으로 파행을 겪는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해줄 것을 강조했다. 정 의장은 “과거 자신들이 여당일 때, 야당일 때 어떻게 했는지 한발 물러서 생각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다 보면 해법이 보이게 마련”이라며 “더욱이 정당별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진 다당체제에서 ‘협치’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정신이 됐다”고 주문했다.
정책 검증의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신상털기식 ‘망신주기’ 청문회로 전락해버린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정 의장은 정책 검증은 공개로 하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의견에 대해 “여야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인사청문제도 개선에 합의해주길 바란다”며 “합의가 조속히 이뤄질 경우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인사들부터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맞춰 여야 원내대표들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소위를 구성해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정 의장은 ‘식물국회’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주요 법안 통과를 둘러싼 다수당의 날치기 횡포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남용 등을 막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하지만 쟁점법안의 경우 통과요건을 국회의원 정족수의 60%(180석) 이상으로 지나치게 강화해 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폭력사태가 난무하던 ‘동물국회’에서는 탈피했지만 자칫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는 ‘식물국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개정 요구가 커지는 상황이다.
정 의장은 “대의정치의 기본정신은 다수결을 토대로 하되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인데 지금의 선진화법을 따르면 소수가 마음대로 다수를 흔들 수도 있다”며 “더욱이 국회 선진화법은 양당제를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인데 20대 국회에서 다당제로 바뀐 만큼 새로운 체제에 맞춰 선진화법도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20대 국회의 최대 과제인 개헌을 앞으로 1년 남은 임기 내에 완수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문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모두 개헌에 긍정적인 만큼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올해 안에 단일안을 만든 뒤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에 편중된 권력을 나누는 방향으로 가되 선거구제 변경도 ‘패키지’로 함께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김현상·나윤석기자 kim0123@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16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이호재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화·타협의 정치 중시하는 ‘미스터 스마일’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항상 따라붙는 별명은 ‘미스터 스마일’이다. 상호 비난과 독설이 난무하는 정치권에서도 웬만해선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얼굴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항상 환하게 웃음 짓는 표정만큼이나 정 의장의 정치 철학 역시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다. 여소야대로 출범한 20대 국회가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도 무난히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정 의장이 갖고 있는 화합의 리더십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지만 졸업 후에는 쌍용그룹에 입사해 임원까지 지낸 덕분에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약력
△1950년 전북 진안 △1969년 전주 신흥고 △1973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75년 고려대 법학과 △1990년 미 페퍼다인대 경영학 석사 △2004년 경희대 경영학 박사 △1978~1995년 쌍용그룹 △제15~20대 국회의원 △2002년 제16대 노무현 대선후보 중앙선대위 국가비젼21위원회 본부장 △2003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7년 열린우리당 의장 △2008년 민주당 대표 △2016년~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