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면을 벗은 성기윤, '인간의 시간'으로 26년 배우 인생을 돌아보다

진정한 국민을 위한 대통령(태양의 후예)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다 못해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인하려 했던 범죄자(추리의 여왕)로 변신한 성기윤이 이번엔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배 한 가운데에서 승선객들을 이끌어가는 함장(인간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뮤지컬 ‘시카고’ ‘아이다’ ‘맘마미아’ 의 히어로이자 무대 경력 26년차 베테랑 성기윤 배우는 “신인 배우의 자세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20년이 넘게 뮤지컬 배우로 살아왔지만, 방송 쪽에선 신인 배우입니다. 신인인데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열심히 해야죠. 어디 가서 제 뮤지컬 배우 경력을 가지고 우쭐하거나 하지 않아요. 저란 배우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 오히려 플러스 알파가 되지 않을까요.”

배우 성기윤 /사진=조은정 기자
▶가면을 벗은 성기윤, 삶 자체에 질문을 던지다



숱한 뮤지컬에서 앙상블과 조연을 거쳐 주연으로 활동하며 춤, 노래, 연기 실력을 갖춘 ‘믿고 보는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았지만, 최근 그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배우 중에 춤을 추거나 노래를 잘 하는 친구들이 하는 장르가 뮤지컬이고,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배우를 뮤지컬 배우라 불러요. 보는 이들은 뮤지컬 배우, 영화 배우, 드라마 배우라고 구분 할 수 있겠지만, 하는 사람 입장에선 스스로 선이 없어요. 다 배우인거죠. 전 그냥 ‘배우’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뮤지컬을 주로 했지만, 앞으로는 영화든 드라마든 장르 구분 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그는 현재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의 시간’을 촬영 중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영화 ‘인간의 시간’은 크루즈 여행을 떠나던 배가 예상치 못한 세계로 접어들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을 통해 인류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작품이다. 최근 배우 안성기, 이성재, 류승범, 장근석 등은 물론 일본 유명 배우 후지이 미나, 오다기리 조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는 ‘가면을 벗어던진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김기덕 감독님 영화를 워낙 좋아하긴 하는데, 사실 일반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잖아요. 그 점이 살짝 걱정이 되긴 했어요. 이번에 기회가 돼서 함께하게 됐는데,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요. 뭐랄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몇 분 없을 듯 해요. 그냥 삶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돌아보게 해요. 이 가면을 다 벗어던졌을 때, 뭘 감사하고 또 뭘 조심하고 살아야 할까. 그 점을 생각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

배우 성기윤
영화 속에서 함장으로 등장하는 그는 보통 사람의 가장 인간다운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예정. 그렇다고 단순한 권선징악 구조의 작품은 아니다.

“나쁜 역이다 아니다 라고 구분하는 건 무의미할 듯 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보통 사람인 것 같아요. 배에선 최고의 대장인 함장을 맡았어요. 이 인물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사심도 드러내요. 어쩌면 그에 가장 인간다운 마음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여기 나온 모든 분들이 그런 면이 있어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애써 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정면으로 들이밀며 어떻게든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장 객석 속에 파묻혀 들어간 채 눈을 질끈 감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기윤 역시 ‘그 상황이 너무 사실처럼 와 닿아서 그런지 모르겠다’며 동의를 표했다.

“김 감독님 영화는 편히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영화가 그렇게 보기 힘든 장면으로 일관한다기 보다는, 그 상황과 소리들이 몸서리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영화 화면을 보고 눈을 감게 되는거죠. 너무 와 닿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숨겨둔 마음이 드러나니까요.“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각기 다른 주제를 두고 펼치는 대화를 통해 인생을 진솔하게 논하는 연극 ‘그와 그녀와 목요일’(27일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에서 개막)로도 관객을 만난다. 초견력(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그것을 파악하고 소화하는 힘)에 남다른 능력을 자랑하는 성기윤은 대본의 3분의 1까지 읽으면서도 결말이 예측 되지 않아 오히려 작품에 끌렸다고 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되게 흥미로웠어요. 마지막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진짜 이 사람이 뭔가 하고 싶은 게 분명하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공연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글을 쓰고 있구나! 그런 게 느껴져 이 작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있는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연극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을 얻는 게 어디에 있을까요. 그게 사랑이 됐든 가족이 됐든, 진짜 행복을 느끼면 사랑이라 부르잖아요. 이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요.”

배우 성기윤


▶ 인간 성기윤의 화두는 ‘행복한 삶’

요즘 인간 성기윤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이다. 그렇기에 배우 성기윤의 삶만이 아닌 사람 성기윤의 시간을 더욱 행복하게 채우고자 했다.

“ 나이를 먹고 인생의 변화가 오면서 제 가치 기준의 1번이 바뀌고 있어요. 그 전에는 무조건 일이 넘버 원이었거든요. 배우 성기윤이 아닌 사람 성기윤으로 있는 시간이 불편했어요. 분장실 가면 조금 편해지고, 무대 올라가면 제일 편해졌거든요. 그런데 그 시간은 빌리 혹은 조세르, 샘으로 있는 시간이지 인간 성기윤으로 있는 시간이 아니죠. 그런데 전 그게 바로 저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2~3년 사이에 저를 천천히 돌아보는데... ‘사람 성기윤이 좋아하는 게 뭐지?’ 란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는거에요. 진짜 사람 성기윤이 행복해지는 게 뭘까?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란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어요,”

40대 중반을 넘기고 어느덧 중후한 4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성기윤. 그는 배우에겐 더 없이 멋있는 나이 40대를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고집스러움을 내려놓게 되더라’ 며 웃었다. 이어 세상 모든 갈등과 충돌은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데서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하면서 (극 중)세 명의 아빠 후보들이 분장실을 같이 쓰면서 떨었던 수다가 기억에 남네요. 우리는 대부분 남들과 부딪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표현을 하는데 이현우 형님이 거기서 ‘어떻게’를 빼고 ‘그럴 수 있어’ 라고 생각해 봐라고 했어요. 그 때 모든 이들이 빵 터져서 깔깔거리며 웃었어요. 정말 현명한 이야기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인간의 시간’도 그렇고 ‘그와 그녀의 목요일’도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

▶ 성기윤의 시간...“내가 이 세상에서 예술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요”



그는 ‘성기윤 잘한다’보다는 ‘작품 너무 재미있다’란 평이 더욱 좋다고 했다. 작품이란 큰 그림 속에서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은 완벽한 조각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은 무대에서 온전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품 퀄리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배우의 믿음은 신념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공연을 보고 나와서, ‘저 배우 진짜 잘한다’ 란 이야기가 나오면 과연 저 작품이 좋은 작품이었을까요. 한 배우가 유독 튀어보였다면. 그 배우가 작품을 방해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그 배우가 작품과 너무 어울리게 잘하더라.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다 모자이크 조각이니까요. 우리가 전체의 한 조각으로 충실해야, 내 조각을 만들어냈다고 봐요. 배우라는 말 이전에 저는 제가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거든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있겠지만, 지켜야 하는 의무도 있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예술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순히 배우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나를 보여주고 하는 이런 관계에서 온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성기윤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누군가는 그의 인생이 탄탄대로가 아닌 것을 두고 다른 배우와 비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살면서 비교하면 안되는 게 ‘사랑’과 ‘시간’이라며 달인의 미소를 보인다. 이어 ‘안달이 난 채 막 애쓴다고 크게 변할거라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저도 어릴 때 조급함이 있었어요. 왜 내가 하는 것에 비해 기회가 많이 안 오는 걸까?란 생각을 했으니까요. 한참 좌절감에 빠져있을 때 허준호 선배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죠. 세상을 살면서 비교하면 안되는 게 ‘내가 하는 사랑’과 ‘다른 사람의 시간’이라고. 사실 난 나만의 시간이 있고, 나만의 사랑이 있는건데 왜 남이랑 비교를 하는 걸까요. 그렇게 비교를 하지 않고 내 길을 가니까 편해졌어요. 세 명이 모이면 그 중의 한명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전 제가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게 행복해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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