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전 65기…드디어 웃었다

KPGA 투어 카이도 골든 V1 이정환 우승
상금랭킹 127위까지 밀렸던 무명
김승혁과 2주 연속 연장 접전
와이어투와이어로 데뷔 첫 승
韓 남자골프 대표할 새 스타로

캐디를 맡은 친동생 이정훈씨(왼쪽)와 18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든 이정환. /사진제공=KPGA


“만세 포즈 좀 취해줘요.”

이정환(26·PXG)은 현장의 사진기자들을 애태웠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데뷔 7년 만의 첫 우승. 세리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이정환은 감격에 겨운 듯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주위의 다급한 요청에 어색하게 양팔을 들어 올리고 나서야 우승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보였다.

18일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CC(파72·7,158야드)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카이도시리즈 골든V1 오픈(총상금 3억원). 이정환은 지난주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에 이어 김승혁(31)과 2주 연속 연장을 벌였다. 같은 선수 2명의 2주 연속 연장은 KPGA 투어 사상 처음. 둘은 이번 주 3·4라운드도 같은 조로 경기했다.


쫓기는 쪽은 이정환이었다. 2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다 17번홀(파4) 보기를 적은 그는 이 홀에서 김승혁에게 버디를 얻어맞아 공동 1위를 허용했고 결국 17언더파 동타로 연장까지 끌려갔다. 지난주 연장 패배의 기억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기도 했다.

18번홀(파4)에서 계속된 연장 첫 홀. 앞서 17·18번홀에서 연거푸 티샷이 흔들렸던 이정환은 이번에는 정확한 티샷으로 페어웨이를 지켰다. 이후 둘 다 먼 거리 버디 퍼트를 남긴 그린 위에서의 승부. 이정환은 무난하게 2퍼트 파로 마친 뒤 김승혁의 파 퍼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는 1.2m. 두 번째 연장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김승혁의 짧은 퍼트는 홀을 외면했고 이정환은 캐디인 남동생 이정훈의 포옹을 받고서야 우승을 실감했다. 우승상금은 6,000만원. 지난주 준우승 상금 1억원을 더해 2주간 1억6,000만원을 벌었다. 또 데뷔 첫 승을 와이어투와이어(1~4라운드 내리 선두)로 거머쥔 것은 2015년 6월 이태희 이후 2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다.

2010년 상금랭킹 87위로 출발한 이정환은 지난해는 상금 127위까지 밀릴 정도로 무명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사이 2부 투어와 중국 투어를 전전하기도 했다. 내세울 것은 KPGA 투어 최장신(188㎝)이라는 것 정도. 이정환은 그러나 올 시즌 그린 적중률 1위(82.3%)에 오를 정도의 정교한 아이언 샷을 장착하면서 국내 남자골프를 대표할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올해 6개 출전 대회에서 톱10에 네 차례 올랐고 공동 21위가 최악의 성적일 만큼 안정적인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했지만 우승 경험이 없어선지 이날 이정환의 플레이에선 유독 중압감이 느껴졌다. 반면 지난주 우승자 김승혁은 1~3번홀 연속 버디 등으로 이날 4타나 줄였다. 1타 차 살얼음 리드로 맞은 16번홀(파5). 이정환은 그린 주변 벙커샷을 홀 1.5m에 떨어뜨린 뒤 버디를 잡아 2위 그룹을 2타 차로 따돌렸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17번홀(파4)에서 곧바로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리는 바람에 보기를 적고는 연장을 맞았다. 정규라운드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버디 4개와 보기 3개로 1타를 줄이는 데 그친 이정환이지만 연장에서는 오히려 침착함을 유지한 끝에 기어이 64전65기에 성공했다. 이정환은 “이제 시작이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빨리 더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상금과 대상(MVP) 포인트 선두인 최진호는 2타를 줄여 10언더파 공동 13위로 마쳤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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