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은 15일 인스타그램에 “LP, 테이프, CD, USB 파일 등이 포인트가 아니다”며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결정에 반발하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출처=지드래곤 인스타그램
봉준호 ‘옥자’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진행해 논란이 됐다.
플랫폼의 진화는 기존 산업 질서를 재편한다. 과거 ‘소리바다’와 ‘벅스’가 그랬다. ‘소리바다’는 ‘음원’을 벅스뮤직’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가수 및 음반사들과 소송에 휩싸였지만 결국 한국의 ‘음원’ 및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을 새로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인터넷으로 영상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에 정체성 논란을 지피고 있다.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와 지드래곤의 4집 음반 ‘권지용’을 과연 기존의 영화나 음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다툼이 바로 그것이다.
◇‘권지용’, 음반인가 아닌가= YG엔터테인먼트는 19일 지드래곤의 솔로앨범 ‘권지용’을 발매했다. 이에 국가 공인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가온차트의 ‘앨범’은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으로만 한정한다”며 ‘권지용’을 음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드래곤은 CD가 아닌 USB 형태로 앨범을 제작했는데, 이 USB 속에 음원 대신 음원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사이트로 연결되는 인터넷 링크만 있어 논란이 일었다. 지드래곤은 지난 15일 인스타그램에 “누군지도 모르는 어떠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그저 ‘음반이다/아니다’로 달랑 나누어지면 끝인가?”로 시작하는 글을 올려 음콘협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인 한터차트는 ‘권지용’을 음반으로 인정했다. 한터차트 관계자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품으로 나와 판매되는 것이라 음원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음반으로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옥자’, 극장영화인가 아닌가= 영화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오는 29일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진행한다. 그러나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는 영화 생태계를 교란했다는 이유로 ‘옥자’에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이에 앞서 넷플릭스는 5,000만달러(약 565억원)라는 거금을 투자하며 홀드백(극장 개봉 3주 이후에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무력화했고, 이 때문에 칸 영화제 일부 심사위원은 “프랑스 내 극장에서 상영하지도 않는 영화를 영화제에 초대할 수 있는가”며 반발했다.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 ‘옥자’는 상업적 가치가 높지만 넷플릭스와 동시에 상영되면 관객들은 영화관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를 고를 수 있기에 개봉 초기 수익이 중요한 영화관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 수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옥자’가 성공할 경우 기존 멀티플렉스와 배급사를 무시하고 유튜브나 IPTV 등이 자체로 영화를 제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음원이 음반을 대체하듯 산업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셈이다. 하지만 지방 독립영화상영관들은 17일 “옥자를 상영하겠다”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에 의해 수직계열화된 멀티플렉스가 또 다른 대기업(넷플릭스)이 수익창출구조를 흔들 조짐이 보이자 영화유통구조와 생태계를 언급한다”고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은 플랫폼= 문제는 극장, CD라는 기존 플랫폼이 아닌 인터넷 스트리밍서비스, USB를 통한 다운로드 링크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USB 음반이나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상영하는 영화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소규모 영화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IPTV에서 동시에 개봉하고 있다. USB 형태의 음반은 가수 김장훈, 그룹 갓세븐 등도 발매한 바 있다. 이번 ‘옥자’와 ‘권지용’ 논란 이면에는 ‘봉준호’와 ‘지드래곤’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 업계를 주도하는 스타 아티스트인 이 두 명의 행보에 따라 앞으로 시장의 질서가 ‘소리바다’, ‘벅스’ 때와 같이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TV에서도 IPTV가 대두 될 때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기준대로라면 방송은 전파를 통해 안테나로 수신하는 것이다. IPTV는 전파가 아닌 인터넷망으로 방송을 수신한다. 하지만 정부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라는 전제 아래 방송법과 IPTV법을 합친 통합방송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주기석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사무국장은 플랫폼 논란에 대해 “결국 산업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말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