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박열’ 이제훈, 연기와 투쟁에 ‘미친자’...사이다급 대변신

“첫 단식 도전, 탄수화물 보지도 않고 단백질 쉐이크만”

배우 이제훈이 인생작 ‘파수꾼’을 뛰어넘을 만큼의 강렬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외치는 일제강점기 거침없고 도발적인 ‘사이다 캐릭터’로 대변신했다. 남루한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 사방팔방 뻗은 장발까지 직전의 드라마 ‘내일 그대와’ 유소준의 멀끔함은 어디에도 없다. 한 마디로 이제훈과 박열은 각각 연기와 투쟁에 ‘미친자’다.

배우 이제훈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제훈은 상당히 진지한 태도로 ‘박열’ 관련 인터뷰에 임했다. 몇몇 방송 등으로 보인 소위 ‘잔망스러운 매력’과는 사뭇 다르게 아직 영화의 묵직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상당수의 일본어 대사, 호기로운 눈빛, 폭발적인 발성까지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역대급 연기’에 도전했다.

“작품을 하고서 극장에서 볼 때 아쉽거나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이번 작품은 제 그릇 안에서 온전히 모든 걸 쏟아 부은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동시에 역사적 인물이 미화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넘치지 않게끔 제어했죠. 캐릭터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억압이나 뜨거움으로 인한 해소라기보다, 박열의 투옥 과정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싶었죠.”

배우의 감정을 흐름에 맞춰 채우려는 이준익 감독의 기존 방식대로 ‘박열’ 시나리오 안에서 역시 지문을 찾기 어려웠다. 이준익 감독과 처음 작업하는 이제훈에게 당황스럽지 않았는지 묻자 “시나리오를 처음에 읽고서 일반적인 상업 영화 느낌이 아니었어요. 문학적이면서도 내용의 흐름들이, 감독님의 전작인 ‘동주’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표현하는 방식의 결이 다른 것 같았어요. 이번 영화는 ‘동주’보다 예산이 크다고 들었어요. 박열이라는 사람은 저조차도 이름이 생소했던 인물이었는데,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많이 놀라웠어요. 인물을 팩션으로 포장하려는 부분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을 그대로 가져와서 발췌한 느낌을 많이 받아서 조심스러웠죠.”

배우 이제훈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박열은 1919년 3.1운동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 일제의 폭압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청년이다. 이 때문에 이제훈은 영화의 50%를 일본어로 소화해야 했다. 이제훈은 캐릭터 변신보다도 완벽한 일본어 구사에 대한 중압감을 가장 크게 느꼈다.

“일본어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고레’ ‘얼마예요’ 정도 밖에 몰랐는데 ‘허걱’했죠. 너무 부담감이 컸어요. 특히 공판장신에서는 한국어로도 힘든 말을 어려운 단어들을 써서 표현할 수 있을까 상당히 걱정이 컸어요. 첫 번째 임무가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이겠더라고요. 같이 작업한 배우 중 일본어 잘하는 최희서, 미즈노 역의 김인우, 후지시타 역의 최우수 배우에게 문장, 문단, 단어까지 녹음을 부탁했는데 성심성의껏 가르쳐줬어요.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점이었어요. 감독님이 일본어를 잘 쓰는 배우의 캐스팅을 가장 중시 여겼거든요. 어색함 없이 빠져들 수 있도록 보여야 했어요. 일본 내각의 배우들은 직접 일본인을 모셔 와서 연기했고요.”


인물들의 내면적인 고통과 심경을 표현해야 했던 터라, 강약의 진폭이 큰 영화는 아니었다. 배우들에게는 오로지 내면 연기로 장면을 이끌어가야 하는 고난도 숙제가 따르기도 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집중도와 밀도가 상당했어요. 이전에는 신 자체를 해석할 때, 연기를 해보면서 방법을 갖춰나갔거든요. 이번에는 테이크가 많지 않기도 해서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나를 내려놓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려 했고요. 박열이라는 인물이 소년 같기도 하고 불꽃같이 타오르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했어요. 그에 대한 진심을 법정에서 여과 없이 이야기했죠. 그래서 박열이란 인물을 연기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어요. 두려움도 함께 계속 있었고요.”

일단 ‘박열’은 포스터에서부터 풍기는 이제훈의 ‘탈 미모’로 외적인 변신을 기대케 한다. 이는 그저 영화의 임팩트에 치중한 것이 아닌, 실존 인물 박열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 노력이기도 했다. “앞머리만 기르고 뒷머리는 부분 가발로 연출했어요. 박열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표현한다더라고요. 저야 당연히 고증에 맞춰서 했죠.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 감옥 세트장에 처음 분장을 하고 갔는데 다들 저를 못 알아보더라고요. 일부러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독님도 저를 보고 당황해서 놀랄 정도였죠. 주변에서 ‘너무 간 것 같다’고 했을 때 의구심은 있었지만, 저를 지우고 박열을 투영해서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겠더라고요.”

배우 이제훈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분장뿐만 아니라, 실제 투옥 과정에서 야위어 간 박열의 외형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제훈은 혹독한 단식까지 감행했다. “촬영 기간이 24회 차에 6주간 진행됐어요. 영화중에 박열이 단식투쟁을 하는 장면이 있어서 그에 따랐죠. 처음으로 단식을 해봤는데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먹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영양이 잘 채워져야겠더라고요. 5주간 서서히 밥을 줄여가면서 쌀, 탄수화물은 보지도 않고 단백질 쉐이크를 마셨어요. 촬영 마지막 날이 돼서야 떡볶이를 먹었어요. 탄수화물이 주는 강렬함이 뇌를 자극하더라고요.(웃음) 인류에 있어서 탄수화물은 축복이에요. 인류의 삶이 탄수화물로 윤택해 진다고 느꼈죠.”

‘박열’은 중심인물 박열이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의 정서적 교류가 박열의 자아를 완성시키기도 한다. 시대가 낳은 아나키스트 한국인 박열과 일본인 후미코는 같은 사상과 사랑의 감정까지 공유한다. ‘동주’에 이어 이준익 감독의 뮤즈로 활약한 최희서와의 첫 케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고.



“가네코 후미코와 러브스토리라는 걸 촬영 막바지에 깨달았어요. 정신적인 신념을 통해서 함께 간다는 게 놀라웠죠. 최희서 배우가 연기한 것에 대한 신뢰가 영화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요. 최희서 씨가 영화를 많이 봐 왔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했고, 호기심을 가지고 많이 물어봤어요. 저도 반가운 마음에 화답을 했고요. 그래서 화학작용이 잘 일어난 것 같아요.”

“처음부터 후미코가 ‘동지로서 동거하자’고 하잖아요.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장면 없이 마지막 부분에서만 잠깐 스킨십을 보여주죠. 남녀 간의 사랑도 있겠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신념이 같다면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애정신이 너무 없어서 ‘교감하는 신을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플라토닉 러브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강조돼야 했더라고요. 박열이라는 인물이 가네코 후미코 없이는 설명 불가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가네코 후미코가 있어서 박열이 성장할 수 있었고요. 그 여성은 위대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배우자로서 평생 만날 사람으로는 ‘신의’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이제훈은 ‘박열’의 궁극적인 의미, ‘박열’로 깨달은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이는 그가 망설임 없이 망가져 보겠다는 의지를 솟구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한일 관계의 아픈 역사가 있고, 해결되지 못한 지점이 아직 많다고 생각해요. 고통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주관적이더라도 목소리를 내야지 우리가 잊지 않고 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깨달았어요. 자유에 대한 의지와 평등이 지금 세대에게는 기본 권리잖아요. 당시에는 그것이 거세됐죠. 그런 희생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배우 이제훈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