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 고시 447호. 1971년 7월30일 서울 세종로에서 반경 15㎞의 원형을 따라 폭 2~10㎞에 영구 차단 녹지를 지정한다는 내용이 관보에 실렸다. 대한민국 부동산 지도에 한 획을 그은 그린벨트가 쳐진 순간이다. 그로부터 19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총 5,379㎢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 전 국토의 5.4%나 되는 엄청난 땅이다. 전체 면적의 80%가 사유지다 보니 여론이 호의적일 리 만무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땅값이 10분1토막 났다는 땅 주인의 하소연과 아들 장가보내려 집터를 산 서울시민의 날벼락 반응이 등장한다. 그래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꿈쩍도 안 했다. 재임 중 단 한 평도 풀지 않았고 그린벨트 관리 규정이 건설부 장관 소관임에도 자신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억제와 녹지 쉼터 제공 등의 다목적 녹색 정책이지만 도입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는 시각이 있다. 정치지리학자인 임동근 교수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2015)’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한 영동 체비지 매각이 신통치 않자 투기 붐이 일던 서울 외곽을 묶어 민간 자본을 체비지 쪽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숨은 배경이 뭐든 그린벨트야말로 당대보다 후대에 더 찬사를 받는 정책이다.
금단의 땅이 본격적으로 풀린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다. 아예 대선 공약부터 전면 재조정을 들고 나왔다. 앞서 김영삼 정부는 그린벨트를 독재의 산물로 보고 주민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는 선에서 건축규제를 완화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공익이라는 명분 앞에 도시의 허파는 쪼그라든다. 이명박 정부 때는 반값 아파트(보금자리) 공약 실현의 희생양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 위 행복주택이 실패하자 결국 그린벨트에 손을 댔다. 촉진지구를 지정해 민간의 그린벨트 활용을 턴 것이 뉴스테이(기업형임대주택)다.
새 정부가 뉴스테이 출구전략을 찾을 모양이다. 그린벨트 활용치고는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역대 정부 최고치인 연간 17만 가구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 공약인데 실현의 관건은 가용 토지 확보다. 그린벨트까지 최대한 동원한다는 것이 공약이고 보면 도시의 허파를 보존하기보다 활용에 눈독을 들이기는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 민간이 활용하면 안 되고 공공이 개발하면 괜찮다는 것은 ‘내로남불’ 아닌지. 그린벨트를 파헤치는 순간 공공성을 훼손하긴 매일반이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