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2% 하락한 배럴당 43.2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16일(43.03달러) 이후 9개월 만에 최저치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브렌트유 가격도 배럴당 46.02달러로 마감해 지난해 11월14일(44.43달러)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 수개월간 유가 급등락이 반복됐지만 이날 유가 흐름이 특히 주목받은 것은 WTI가 전고점인 2월23일(배럴당 54.45달러) 대비 21% 추락하며 약세장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고점 대비 유가가 20% 하락할 경우 약세장, 저점 대비 20% 상승하면 강세장에 각각 진입한 것으로 해석한다.
원유감산 효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심리적 지지선마저 힘없이 내주면서 시장은 유가의 추세적 하락 국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4년 배럴당 115달러에 달했던 유가는 어느덧 40달러 초반까지 추락하며 3년 새 62%나 떨어진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원유 약세장 진입은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지난 4년 동안 여섯 번이나 발생하며 추세적 하락 국면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산유국들의 철저한 감산 노력에도 유가는 좀처럼 상승 국면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5월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의 감산 이행률은 10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OPEC은 지난해 11월 원유 생산량 감산에 합의한 데 이어 12월에는 러시아 등 비회원 11개국의 동의도 끌어냈다. 올해 6월 종료 예정이던 감산 합의 이행기간도 내년 3월까지로 미뤄졌다. 하지만 유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배럴당 50달러 수준을 유지했을 뿐 지난 3개월 새 40달러 초반까지 밀려났다. 에너지자문회사 리터부시앤드어소시에이츠의 짐 리터부시 대표는 “주요 OPEC 국가들의 생산 제한에도 유가가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산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셰일석유 생산을 본격화하며 중동의 주요 국가를 잇달아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와 함께 3대 산유국 반열에 올랐다. 정보서비스 업체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미국의 시추공 수는 22주 연속 늘어났으며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유전 수도 지난달 말 기준 5,946개로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기자동차 대중화 등 친환경에너지 사용이 점차 보편화되며 투자자금이 관련 시장으로 몰리는 점도 유가 상승세에 발목을 잡는 장기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도 추세적 하락에 힘을 보태고 있다. OPEC 회원국이지만 내전·송유관 파손 등을 이유로 감산 이행 대상에서 제외된 리비아와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이다. 나이지리아와 리비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4월 말 215만배럴에서 5월 말 246만배럴로 늘었다. 지난해 8월 말(165만매럴)과 비교하면 80만배럴 가까이 급증했다.
모건스탠리는 “OPEC이 내년까지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감산 효과는 발휘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헤지펀드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는 “유가 약세장이 다시 시작되며 배럴당 40달러로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30달러선까지 후퇴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