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커제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이던 지난 5월26일. 알파고의 아버지로 알려진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홍콩으로 날아갔다. 공동창업자인 무스타파 슐레이만과 함께였다. 세계적인 AI 천재 두 사람이 홍콩을 급히 찾은 것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과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두 천재를 만나자마자 리 회장은 AI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두 천재가 AI 연구 방향과 성과를 들려줄 때마다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펜으로 메모하는 것은 기본. 허사비스 CEO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흥분에 겨워 자리에서 수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 89세의 고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남 내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때때로 전문가 못지않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사실 리 회장과 두 천재의 만남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리 회장은 딥마인드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되기 전 리 회장이 소유한 호라이즌벤처스가 딥마인드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한 것. 2014년 딥마인드가 구글에 흡수되면서 호라이즌벤처스는 보유 지분을 매각해 수 배의 차익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녹슬지 않은 리 회장의 탁월한 투자감각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왜 리 회장이 ‘아시아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아시아 최고의 갑부로 불리는 리 회장이 90세 생일을 맞는 내년 7월께 일선에서 퇴진한다는 소식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리 회장은 이런 계획을 후계자로 결정된 큰아들 빅터 리와 측근들에게 알렸다. 이르면 올해 말 은퇴할 수도 있다고 한다. 리 회장은 그간 은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이라도 물러날 수 있다”고 밝혀왔는데 조만간 현실화될 모양이다.
중국 광둥성 출신으로 어린 시절 홍콩으로 이주해 맨손으로 글로벌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다니 아쉽다. 재산 330억달러(약 37조원), 아시아를 대표하는 청쿵그룹 등 그가 이룬 성과도 대단하지만 리카싱의 삶을 관통하는 불굴의 의지와 기업가 정신이 더 값지게 다가온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