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기후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명제를 놓고 독일과 영국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 두 나라는 모두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제시했다. 그러나 햇볕과 바람이 없을 때, 전력을 공급하는 방법이 달랐다. 독일은 원전가동을 중단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햇볕과 바람이 없어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어려울 때는,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어차피 연결된 유럽의 전력망에서 전력을 끌어오거나 자국에서 생산되는 갈탄을 태워서 전력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났다. 2012년 독일 태양광 발전은 설비이용율이 11%에 불과했고 풍력발전 설비이용율은 17%에 불과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갈탄발전소를 가동해야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자력발전을 갈탄으로 대체한 셈이 돼버렸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영국의 해법은 달랐다. 영국은 대화에 나섰다. 재생에너지, 석탄발전, 원자력발전 등 전력의 생산에 관계된 전문가와 전력공급을 위해 전력망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대화를 나눴다. 전력이 생산돼도 전력망이 없다면 전력은 공급되지 않는다. 자원의 잠재량이 충분해도 기술이 부족하면 자원이 아니다.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어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생산할 수 없다면 이용 가능한 전원은 아니다.
전문가마다 입장이 달랐고 의견은 쉽사리 수렴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전문가가 합의할 수 있는 하나의 비전을 도출했다. 그것이 ‘이산화탄소 순배출 제로(Net zero emission)’이다.
기후 온난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한 지역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그만큼이 배출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이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어려움을 가져온다. 풍력발전을 할 수 없는 동안 어떻게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 석탄, LNG와 같은 화력발전은 답이 아니다. 해저케이블로부터 유럽의 전력을 수입하는 경우에도 이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어야 한다.
그 결과 영국은 풍력발전을 늘리고 풍력발전이 불가능할 때에는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스웨덴에 전력망을 연결해서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공급받는 것도 논의했다. 그것이 영국의 에너지전환(Energy Transition)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풍력발전이 늘어나는 것만 알려져 있고 원전을 건설할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보의 편중이 대중의 판단을 왜곡시킨 것이다.
영국은 이러한 비전에 따라 정책을 수립한 후 이행하기 전 국민에게 물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저감하기 위해 비용 상승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또 원전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국민들이 어떤 공약을 지지했을 때 정책화된 이후의 부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지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저감이라는 문제를 놓고 독일은 앞에서는 풍력발전을 지었지만 뒤에서 갈탄발전소를 지어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결과적으로 문제를 거꾸로 푼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저감이라는 목적이 아니라 풍력확대라는 수단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유기농이 친환경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모든 농사를 소출이 적은 유기농으로 한다면 굶주리는 사람이 늘어나거나 더 많은 숲을 농토로 개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경우도 에너지밀도가 낮아서 일정규모 이상을 공급하려면 결국 자연을 훼손해야 한다. 부분적으로는 친환경적이어도 전체적으로는 그 반대일 수가 있다. 앞으로는 깨끗하고 뒤로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