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고발·檢 수사에도…300억 '개미 간' 빼먹은 유사수신업체

작년 4월 혐의 포착…"피해자 안 나타나" 수사 미적
위리치에셋 대표·동업자 투자금 들고서 돌연 잠적
"100% 고수익 보장한다더니…" 피해자들 발만 동동



# 국세청 9급 공무원 출신으로 부동산 업계에서 조세 전문가로 알려진 전모씨. 지방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했던 김모씨는 지난 2015년 2월 전씨를 찾아가 금융권 인맥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후 위리치에셋(옛 신화포럼리츠)이라는 투자업체를 설립한 전씨와 김씨는 금융사 등의 재무설계사(FC)와 포털사이트 카페를 통해 상품이 연 50~100%의 고수익률을 보장한다고 광고하며 수백 명의 개미투자자를 모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4월 전씨와 위리치에셋의 유사수신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전씨와 김씨의 위리치에셋은 검찰 고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 수혈한 자금으로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했다. 약속대로 이자를 받은 투자자들은 안심하고 더 많은 돈을 넣었다.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아 금융당국과 검찰의 감시망이 약해지자 위리치에셋 대표 김씨는 결국 각종 서류와 약 300억원의 투자금을 들고 잠적했다. 위리치에셋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전씨의 행방 역시 묘연하다. 결혼·출산·전세자금 등 각기 사연이 다른 돈을 맡긴 투자자만 발을 동동 구르게 됐다. ★본지 2016년 11월18일자 20면 참조

초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잃은 개미투자자의 자금을 노린 유사수신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감독과 적발이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을 파고들어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나 한독투자자문 대표 김모씨처럼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로 허위 광고를 해 자금을 빨아들인 뒤 돈을 빼돌리거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위리치에셋 피해자 모임은 최근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잠적한 전씨와 김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피해자 모임 측 법률대리인은 “김씨가 위리치에셋 투자 관련 서류와 은행 거래를 위한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모두 챙겨 달아나 정확한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씨와 김씨가 운영한 위리치에셋은 그동안 부동산 부실채권(NPL)을 비롯해 인천 리조트, 강원도 펫타운(반려동물 시설), 경기도 물류창고 등에 투자한다며 2015년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 자금을 모았다. 포털사이트뿐만 아니라 재무설계사도 동원했다. 대부분의 투자자 역시 처음에는 정해진 수익금을 돌려받으며 의심하지 않고 돈을 더 내기까지 했다.

분위기는 이달부터 달라졌다. 7~9월이 만기일인 투자 상품의 수익금 지급이 계속 미뤄졌다. 3억원 가까이 위리치에셋에 보냈다는 한 피해자는 “김씨가 잠적한 뒤 투자 상황을 여러 경로로 확인해보니 제대로 자금이 집행된 사례가 없었다”며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 투자금을 돌려막는 사기에 당했다”고 토로했다.

위리치에셋의 유사수신 혐의 사건은 이미 금감원의 검찰 고발로 1년 전에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에 배당됐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는 진척을 보지 못했고 기소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사하기가 어려웠다는 게 검찰 쪽의 설명이다. 감독기관인 금감원은 직권조사권이 없어 유사수신 혐의자를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등 최소한의 조처만 취할 수 있다. 금감원에 직권조사권을 부여하고 유사수신 처벌 양형 기준을 징역 5년에서 10년으로 높이는 관련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FX마진(해외통화선물) 거래로 고수익을 올려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1조원이 넘는 거래를 가로챈 IDS홀딩스 대표 김모씨가 사기와 유사수신 혐의로 지난해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몰래 같은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유사수신 행위의 단속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심지어 IDS홀딩스에 속했던 실무진이 새로 유사수신 업체 ‘퀀텀인베스트’를 꾸려 투자자에 구두로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강조하면서 FX마진 투자자를 모집하다가 금감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김상록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유사수신 업체의 행태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며 “일단 일이 터지면 범인을 잡더라도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은 만큼 투자 전에 금융기관인지부터 확인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