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겸 개그맨 박성광 /사진=조은정 기자
박성광이라는 이름에 아직은 ‘감독’보다 ‘개그맨’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장편 상업 영화라야 ‘영화 좀 만들었구나’라는 인식이 생길 법한데, 그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를 뗀 정도다. 그럼에도 두 번째 작품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15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진행된 ‘슬프지 않아서 슬픈’ VIP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감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슬프지 않아서 슬픈’은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택배기사 철우(성현)가 여자주인공 민지(김용주)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슴 시린 멜로드라마. 개그맨의 편견을 과감히 깨고 과감히 멜로 장르에 도전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진지하다.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흐름, 풍부한 감성의 영상미,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메시지까지 고루 몰입한 흔적이 역력하다. 28분의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알차게도 담겨 있다. 박성광의 의욕만큼 완성도를 지녔다.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이번 영화 이야기를 전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새삼 진실성이 느껴진다.
22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박성광이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감독 겸 개그맨 박성광 /사진=조은정 기자
-2011년 ‘욕’에 이어 두 번째 단편 ‘슬프지 않아서 슬픈’을 연출한 소감은?
초기에 만들 때의 느낌과 촬영 때의 느낌, 그리고 시사회 이후의 느낌이 다르다. 시사회를 마치고서는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만든 영상을 사람들이 보고 같이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다음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번 영화를 만든 후 주변의 반응은?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잘 찍어서 놀랐다고 하더라. ‘영상미가 있었다’, ‘공감돼서 슬펐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 영화는 개그맨이 만들었다는 편견을 지우고 싶었다. 쉽게 말해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부분은 많이 해소된 것 같다. 80% 정도 만족한다. 그래서 멜로를 선택한 것도 있다. 촬영 초반에 장르를 멜로로 갈지 스릴러로 갈지 고민하기도 했다. 열린 결말이다.
-영화에서 감수성 짙은 영상미가 돋보였다. 촬영이 어떻게 이뤄졌나?
최현기 촬영감독님께서 많이 신경 써주셨다.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 ‘비열한 거리’, ‘마이파더’ 등 상업영화를 많이 하신 분이다. 마침 쉬시던 차에 내 러브콜을 받고 허락해주셨다.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다. 프로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동선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잘 써주셨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학을 전공하고서 계속 영화에 뜻이 있었나?
개그맨을 하면서도 막연하게 ‘연극이든 영화든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마음먹고 저질렀다. 그게 5분짜리 단편 ‘욕’이다. 하지만 그 때 한 없이 부족함을 느꼈고, 또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일과 병행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개콘’을 10년 하고서 쉬는 기간에 몰입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쉴 때 여기(영화)에 매진했다. 주변에서 비웃을까봐 처음에는 영화 만든다고 말도 못 하다가 시나리오가 나오고서 알렸다. ‘영화는 똑똑한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개그맨 겸 영화감독으로 심형래, 이경규의 계보를 잇게 됐다.
선배님들은 처음부터 기술적으로 여유가 있으셔서 1~2시간 분량의 영화를 바로 만드셨는데, 나는 아직 차근차근 만들고 싶다. 5분짜리부터 30분, 1시간 이런 식으로 늘려나가고 싶다. 아직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더 많이 봐야하고. 찍어봐야 하겠다.
-‘슬프지 않아서 슬픈’으로 가지는 목표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이라고.
영화가 완성되는 시기와 출품 시기가 부산국제영화제 시기와 딱 맞겠더라.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부국제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영화감독 겸 개그맨 박성광 /사진=조은정 기자
-주연이자 기억을 잃어가는 택배기사 철우 역으로 신예 성현을 캐스팅한 이유는?
오디션을 보던 중 성현이 착하고 순해 보여서 철우 역에 가장 적합했다.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환경에서 꿋꿋이 살 수 있는 느낌이 들면서, 멜로 장르이기 때문에 호감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필요로 했다. 캐스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장르를 멜로로 할지 스릴러로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성현이 스릴러적인 분위기도 지니고 있었다.
-직접 첫 주연으로 캐스팅한 성현은 어떤 장점이 있는 배우라 생각하나?
배우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현은 도화지 같은 배우다. 여러 분위기를 대입하기 좋겠더라. 배우하기에 정말 좋은 조건이다. 힘든 것도 가리지 않고 해보려 하고 마음가짐도 좋아서 앞으로 잘 될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이 변치 않으면 좋겠다.
-‘슬프지 않아서 슬픈’은 철우와 민지의 로맨스를 다루면서 철우 집안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공감을 자아낸다. 경험담과 레퍼런스를 어떻게 배합했나?
픽션이 들어갔고 실화도 많이 담겼다. 특히 할머니 이야기는 경험담을 바탕으로 했다. 실제로 우리 할머니가 8년 동안 치매로 변을 가리지 못하신 적이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고모가 많이 우셨다. 고모에게 물으니 ‘한편으론 내가 뒷바라지를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서 더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 그래서 ‘슬프지 않아서 슬픈’이라는 제목이 나왔다. 주변에서는 이 제목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제목이라 하더라. 미장센, 느낌, 음악은 ‘클래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뷰티인사이드’ 같은 아련한 느낌도 담고 싶었다.
-개그맨과 감독으로서 박성광의 앞으로의 계획은?
개그로는 내가 기존에 보여주던 식의 장점을 살려서 보여줄 것이다. 영화에서는 개그로 드러내지 않았던 걸 보여주겠다. 스릴러, 슬픔, 코믹 등 다양한 장르로 보여주겠다. 꾸준히 작품을 만들 생각이다. 함께 작업하자는 러브콜도 오고 있고, 웹드라마 영역도 생각 중이다. 하고 싶은 게 되게 많다. 개그맨과 감독 사이의 이미지 상충도 고민되는 부분이지만, 기타노 다케시도 모두 다 하시지 않느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걸 누군가 깨야 할 것 같다.
-박성광의 영화를 접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그맨 박성광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 궁금증을 가지고 보실 텐데, 편견 없이 ‘인간 박성광’이 만든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